[책 vs 책]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vs ‘무관심 연습’

기사승인 2020-11-03 06: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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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책]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vs ‘무관심 연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같은 작가의 소설이어도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 대한 평이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내세운 책과 여러 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도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장편소설이 긴 호흡으로 작품 자체의 읽는 맛을 주무기로 한다면, 단편소설집은 여러 편의 작품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최근엔 다양한 형태의 소설집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작가가 쓴 단편을 모아 출간하는 앤솔로지도 보편화되고 있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 소설도 눈에 띈다. 다음 소개할 두 권의 책은 한 작가가 쓴 여러 편의 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독립적인 단편소설을 하나로 묶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나눠 쓴 것처럼 모두 읽어야 완성된다는 면에서 장편과 단편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그동안 칼럼, 에세이, 소설 등 다방면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작가 김현진의 첫 번째 옴니버스식 연작소설집이다. 각기 다른 삶의 변곡점을 맞이한 여성들은 불안, 혹은 불행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저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주인공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상처 준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에는 여덟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정아’의 주인공 정아부터 ‘정정은 씨의 경우’의 정은, ‘아웃파이터’의 영진, 그리고 정화, 지윤, 화정, 수연, 숙이 등 이들은 누군가에게 상처 받은 뒤 자신의 일상을 빼앗긴다. 그 대상의 대부분이 그들이 사랑했던 ‘남자’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아의 한정된 삶을 면밀히 듣고 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삶은 나와 너, 우리의 사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정용준 소설가의 평처럼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소설 속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것처럼 쉽게 몰입할 수 있지만 그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제목처럼 저자가 꼭 ‘정아’에 대해 말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곱씹게 한다.

 

△ ‘무관심 연습’

‘무관심 연습’은 지난 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낸 작가 심아진이 처음 선보이는 짧은 소설집이다. 저자가 느낀 삶의 사소하고 특별한 순간순간들이 그만의 개성적인 언어로 펼쳐졌다. ‘모르는 만남’, ‘쉬운 어긋남’, ‘따가운 얽힘’, ‘희미한 열림’, ‘얕은 던져짐’까지 다섯 개의 주제로 묶인 총 스물여덟 편의 짧은 소설이 담겼다.

‘무관심 연습’은 제목처럼 저자가 긴 시간 무관심을 연습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자신을 제일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사랑할 때 나오는 거창한 구절들에서 느낀 지겨움이 저자를 무관심으로 이끌었다. 소설은 다양한 상황과 순간들을 하나의 주제로 슬그머니 담아낸다. 뚜렷한 기승전결과 명확한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대신, 모호한 경계에서 가능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날렵한 감각과 우아한 언어로 그렸다.

거리를 두는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과 단편 소설보다 짧은 형식은 독자들을 작가의 독특한 문학 세계로 안내한다. 덕분에 상상할 여지가 넓어진 ‘무관심 연습’의 세계는 작품마다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하며 독자들을 각각의 작품 끝에 있는 ‘흐르는 말’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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