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안망] 선생님, 제가 방금 ‘입덕’한 것 같은데요

기사승인 2021-01-10 07: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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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입버릇처럼 '이생망'을 외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2030세대. 그러나 사람의 일생을 하루로 환산하면 30세는 고작 오전 8시30분. 점심도 먹기 전에 하루를 망하게 둘 수 없다. 이번 생이 망할 것 같은 순간 꺼내 볼 치트키를 쿠키뉴스 2030 기자들이 모아봤다.

[이생안망] 선생님, 제가 방금 ‘입덕’한 것 같은데요
▲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고단한 삶에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존재가 되는 것과도 같다. 태어나 처음으로 연예인에게 ‘입덕’한 당신. 온라인엔 익숙해도 ‘덕질’은 낯설다면 주목하시라. 당신의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을 위한 안내서를 단계별로 준비했다. 덕질에 입문하는 가상의 네티즌 김덕구씨에게 자아를 이입해 보자.
“제가 연예인을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덕후 DNA’라는 게, 제게는 없는 줄 알았다고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룹 A의 멤버 B가 자꾸 눈에 들어와요. B의 영상을 찾아보다가, 모니터에 비친 제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 걸 보며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B의 ‘덕질’을 제대로 시작하고 싶은 저, 어디로 가야 하죠.” - 김덕구(28)
덕구씨, 안녕하세요. B에게 입덕하셨군요. 당황하지 마세요. 누군가의 팬이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랍니다. 게다가, 이젠 연예인 덕질 좀 한다고 한심하게 보는 시대는 지났어요. 오히려 팬클럽의 이름으로 기부나 봉사를 하며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팬덤이 얼마나 많다고요. 그러니 진정하시고…. 오늘은 덕구님처럼 덕질이 처음인 분들을 위한 초급자 코스를 진행할 거예요. 팬카페를 비롯한 공식 커뮤니티 이용법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생안망] 선생님, 제가 방금 ‘입덕’한 것 같은데요
▲ 가수 아이유의 공식 팬카페에 가입하려면 그의 정규 1집 타이틀곡 제목을 정확히 써야 한다. / 팬카페 캡처

B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면, 우선 팬카페부터 가입합시다. 소속사가 운영하는 공식 팬카페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단, 요즘엔 팬카페 가입에도 절차가 있어요. 주로 연예인과 관련한 문제를 맞혀야 하는데요. ‘마마무의 이번 앨범 수록곡 중 선공개 곡은?’ ‘아이유 정규1집 타이틀곡 제목?(영어대문자로)’ ‘비투비의 데뷔일은? (0000년 0월 00일)’ 등입니다. 대부분 문제의 난이도는 낮습니다만, 팬카페에서 요구하는 답변 형식을 유의해야 해요. 비투비의 데뷔일은 2012년 3월21일이지만, ‘2012.03.21.’ 같은 답변으로는 팬카페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0000년 0월 00일’이라는 정답 형식이 주어졌다면, ‘2012년 3월 21일’로 적어야 해요.

등업은 꽤 까다로워요. 대형 스타의 팬카페일수록 정해진 날에만 등업 신청을 받는 경향이 있거든요. 게다가 ‘정회원으로 등업해주세요’ 같은 호소로는 택도 없어요. 그룹 방탄소년단의 팬카페를 예시로 설명해드릴게요. 우선 등업 신청이 가능한 날은 한 달에 6번, 매주 두 번째 주와 네 번째 주의 금·토·일요일에만 진행돼요. 양식에 맞춰 신청글을 써야 하고, 등업 퀴즈를 풀어야 하는 팬카페도 있습니다. 가입 퀴즈와 비교하면 난이도가 꽤 높은데요. 초성만 보고 가사를 유추할 수 있어야 하고, 각 음반 발매일을 숙지해야 하며, 방탄소년단의 동영상 콘텐츠도 꼼꼼히 살펴봐야만 문제를 풀 수 있을 거예요. 최신 음반 타이틀곡 스트리밍과 뮤직비디오 ‘좋아요’ 인증도 필수입니다.

모든 관문을 뚫고 정회원이 된 당신, 이제 자유입니다. 단,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겠죠. 우선 공지사항을 정독하는 게 좋아요. 가령 ‘오늘 A 그룹 숙소 앞에 다녀왔어요!’ 같은 글처럼, 연예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글을 올렸다가는 강퇴행 급행열차를 타게 될 겁니다. 공지에 따라 B를 ‘B씨’ ‘B님’으로 써야만 할 수도 있고요, 다른 회원을 공격하거나 팬들 간 사적인 친목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된 경우도 많으니 주의하세요. 흔히 ‘친목질’이라고도 불리는 일부 회원의 친분 과시는 다른 회원에게 소외감을 주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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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버스에서 가수 선미에게 메시지를 남겨봤다. 해시태그 ‘#To_Sunmi)’는 필수다. / 위버스 캡처

만약 등업에 실패했거나 팬카페 활동이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위버스와 리슨을 둘러보길 추천해요. 리슨은 각각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데요. 자사 소속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최근엔 다른 기획사에 속한 아티스트의 팬 커뮤니티도 제공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선, A 그룹의 팬 커뮤니티가 위버스나 리슨에 개설돼 있는지를 확인해야겠죠? 참고로 위버스는 모바일 앱과 웹 사이트를 모두 지원하고, 리슨은 모바일 앱으로만 접속할 수 있답니다.

위버스의 서비스 항목은 크게 ▲커뮤니티 ▲콘텐츠 ▲쇼핑 ▲매거진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커뮤니티 플랫폼, 그러니까 소통 창구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요. 팬카페와 SNS의 장점을 아우른 것이 특징입니다. 일단 가입만 하면 누구나 글을 남길 수 있어요. 응원봉 아이콘은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같은 기능인데요, 응원을 많이 받은 게시물은 ‘지금 뜨는 포스트’로 소개돼요. 만약 팬들이 쓴 포스트 중에서 엄청난 필력의 ‘띵문’, 그러니까 명문을 발견했다면 책갈피 아이콘을 눌러보세요. ‘나의 활동내역’의 ‘Bookmarks’ 섹션에 저장돼 있을 거예요. 팬아트를 기가 막히게 그린다거나 ‘짤’ 생성에 능한 ‘금손’ 팬의 포스트를 빠짐없이 보고 싶다면, 해당 팬을 팔로우할 수도 있어요. 해당 팬의 피드에 들어가서 ‘구독하기’를 선택한 뒤, ‘나의 활동 내역’ 내의 ‘Subscriptions’ 섹션을 확인해보세요.

가장 중요한 건 아티스트와의 소통일 겁니다. 포스트를 작성할 때 해시태그 ‘#To_가수이름(영문)’을 붙여보세요. 아티스트에게 보내는 ‘To Artist’ 섹션으로 자동 분류된답니다. 반대로, 내가 쓴 글을 아티스트가 읽지 않길 바랄 수도 있겠죠? 간단해요. 하단의 ‘Hide from Artist’(아티스트에게 숨기기)를 누른 뒤 작성하면 된답니다. 아티스트들은 포스트 외에 ‘모먼트’를 남길 수도 있어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과 비슷합니다. 응원하기와 댓글달기가 일정 시간 동안만 열리기 때문에, ‘모먼트’를 함께 즐기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해요. ‘Media’ 섹션에선 유·무료 콘텐츠를 볼 수 있고요, 각종 MD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위버스샵’과 대중문화칼럼니스트들의 기사를 소개하는 ‘위버스 매거진’ 등도 알찹니다.

[이생안망] 선생님, 제가 방금 ‘입덕’한 것 같은데요
▲ 이특은 초대 버블 광공으로 유명하다. / 리슨 캡처

리슨은 ▲커뮤니티 ▲채팅 ▲버블 ▲디어유 레터 등을 서비스해요. 커뮤니티는 공식 커뮤니티와 일반 커뮤니티로 나뉘는데요. 공식 커뮤니티는 한 마디로 ‘게시판이 축소된 팬카페’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일반 회원은 이용할 수 있는 게시판이 ‘한줄응원’ ‘베이직’ ‘To. 아티스트’ 등으로 제한되지만, 에이스 회원이 되면 전용 게시판과 ‘From. 아티스트’도 오갈 수 있어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일반 커뮤니티는 이용이 훨씬 자유롭습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커뮤니티가 없다면, 덕구씨의 취향에 맞는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채팅 서비스는 카카오톡과 비슷해요. 내가 등록한 친구와의 채팅은 물론, 오픈채팅방에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리슨의 꽃은 버블일 겁니다. 버블은 아티스트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인데요. 유료 서비스에 가입하면 구독한 아티스트에게서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어요. 덕구씨가 답장을 보내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아티스트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건 아니지만, “저녁 먹었어?” “뭐해?” 같은 메시지에 답장을 하다 보면 마치 그와 카카오톡 대화를 주고받는 기분이 들 거예요. 메시지를 유독 많이 보내 이른바 ‘버블 광공’으로 불리는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의 버블 구독 후기가 궁금하다면, ‘[체험기] 이특 ‘버블’, 제가 구독해봤습니다’ 기사를 참고해도 좋아요. 디어유 레터는 아날로그 버전의 버블이에요. 월 구독료를 내면 한 달에 한 번씩 아티스트의 손 편지와 포토카드를 등기나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어요. 운이 좋다면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폴라로이드 사진을 받을 수도 있답니다.

아 참. 커뮤니티를 이용하다 보면, ‘별다줄’(별걸 다 줄이는)의 현장을 자주 목격하게 될 거예요. ‘덕후 용어’가 낯선 덕구씨를 위해 기본적인 표현들을 정리해봤어요. 혹시 덕질을 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보인다면, 이 페이지를 참고해보세요.

머글: 팬이 아닌 일반인.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줄임말로, 자신이 덕후임을 숨기는 행위.
덕계못: ‘덕후는 계를 못 탄다’의 줄임말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와의 접점을 놓쳤음을 이르는 말.
덕업일치: 덕질과 직업이 일치함을 이르는 말.
떡밥: 1)아티스트에 관한 새로운 정보 혹은 콘텐츠 2)이전 작품과 연결되는 요소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등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게끔 심어놓은 내용.
궁예: 앞일을 미리 예측하거나 속내를 예상하는 행동.
스밍: 스트리밍.
숨스밍: 숨 쉬듯 스트리밍.
입스밍: 입으로만 스트리밍. ‘스트리밍한다’는 말만 할뿐 실제로 스트리밍하지 아니함.
뮤스: 뮤직비디오 스트리밍.
▲서수: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을 지칭하는 서양수박의 줄임말.
총공: 총공격의 줄임말로, 특정 시간대에 특정 곡을 스트리밍·다운로드하는 등 팬들의 단체행동을 보여줌. 또는 그런 행위.
이선좌: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의 줄임말로, 공연을 예매할 때 자신이 선택하려던 좌석이 다른 관객에게 먼저 넘어간 상황을 이르는 말.
포도알: 공연 예매창에서 아직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좌석.
눈밭: 공연 예매창에서 이미 팔린 좌석.
취켓팅: 취소와 티켓팅의 합성어로, 정해진 기간 안에 티켓값을 지불하지 않아 자동으로 취소된 표를 예매함.
피켓팅: 피와 티켓팅의 합성어로, 피가 튈 만큼 티켓팅이 치열했음을 이르는 말.
용병: 티켓팅을 대신 해주는 사람.

※ 덕후 용어 ‘별다줄’ 테스트

1) 다음 문장을 읽고 어떤 상황인지 서술하시오.

“티켓 오픈 맞춰서 들어갔는데 이미 눈밭. 이선좌 100번 만남. 서수 차트 광탈해서 우리 애들 인기 없는 줄 알았는데, 입스밍 하는 사람 많았나봐.”


2) 다음 상황을 읽고 덕후 용어를 사용해 간략하게 서술하시오.
“배우 K의 팬인 A씨. K는 A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광고모델이기도 하다. 어느 날 A씨 회사를 깜짝 방문한 K. 몇몇 직원들은 K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평소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척하던 A씨는 K에게 말 한 마디 걸지 못했다.”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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