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LH…전 국토부 차관이 바라본 해법은?

부동산 전문가 정창수 가톨릭관동대 석좌교수 인터뷰
런던 템즈강 도크랜드-뉴욕 허드슨야드 등 복합개발 통한 공급 제안
"LH 역할 과감히 축소하고 나머진 시장 기능에 맡길 때
신도시 건설 보다 저소득층 임대주택 공급 필요"

입력 2021-03-30 13: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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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LH…전 국토부 차관이 바라본 해법은?
경기도 광명시 LH 광명시흥사업본부.

[강원=쿠키뉴스] 박하림 기자 =LH는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 어쩌면 최근 ‘LH 부동산 투기의혹 사태’는 현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들의 무사안일 정책의 산물이지 않을까.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다. 지난 1, 2기 신도시 추진 시에도 정보누수에 의한 투기사범을 수백 명씩 적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었다. 형사로 따지면 범죄자는 잡았지만 방범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기어코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마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이 사달이 났다. 현재 LH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현직 고위급 임원들을 비롯해 그들의 친인척·지인들이 부동산 투기세력으로 의심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도시 개발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다. 매스컴을 통해 국민들이 보고 들은 사실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정부는 이제야 투기세력을 근절하겠다며 9급 공무원의 재산까지 공개하겠다는 식의 대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단순하고 막연한 규제만으론 절대 해답을 도출할 수 없다.

이웃나라 일본도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 멀리는 미국과 영국까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사안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단 시정에 맞는 방법을 모색해 응용한다면 지금의 상황보단 더 나은 미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창수 가톨릭관동대학교 석좌교수(행정학박사)는 “현재 공공기관 신설은 시장 자율기능과 국가 경쟁력만 저하시킬 뿐”이라면서 “공공부문 독점적 대량 공급만이 주택시장 해결 방법이라는 공식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LH 역할을 과감히 축소하고 나머진 시장기능에 맡길 때”라면서 “신도시 건설 보단 저소득층 임대주택 공급, 스마트도시조성, 도시재생 등 시대 요구적인 업무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H 사태로 인해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불신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쿠키뉴스는 전 국토해양부 제1차관과 참여정부 주택국장 등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가’ 정창수 석좌교수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정창수 석좌교수와의 일문일답.

현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LH공사, 어떻게 탄생된 것인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1962년 대한주택공사와 함께, 1975년 토지금고로 출발한 한국토지개발공사가 1979년 설립되면서 주공과 토공이 주택과 택지를 대량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고도성장의 여파와 증가된 소득수준에 못 미치는 주거여건으로 주택과 전세가격이 급등하자, 부랴부랴 200만호 주택 공급계획과 함께 건설한 1기 5개 신도시는 그 정점이었지요. 그 효과로 주택가격의 안정을 되찾았으나, 1997년 IMF 구제금융을 야기한 경제위기로 주택건설이 부진해지자 2000년대 초부터 다시 주택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2기 신도시 건설이 다시 추진되었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도심지역의 재건축 대상 단지부터 주택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금리 및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과다와 단기에 가격안정 효과를 노린 세제와 금융규제, 전월세가격 규제 등 각종 규제로 인한 역효과로 가격이 안정되지 않자 급기야 3기 신도시까지 발표하기에 이른 것 입니다.

전반적인 사회 문화가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부동산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일본의 사례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수도권 집중과 급격한 도시화로 대규모 주택공급을 경험했던 일본의 사례를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일본은 전후 복구를 위해 시급한 주택과 택지공급을 위하여 1952년 주택공단, 1975년 택지개발공단을 차례로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민간부문에서 주택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짐에 따라 업무중복과 과중한 부채 문제를 겪고 있던 두 기관은 1981년 주택도시정비공단으로 통합됐습니다. 이후 연간 2만호 내외의 분양주택 공급과 약 70만호(2006년 기준으로 현재는 점차 감소추세임)에 이르는 기존 임대주택 관리 및 낙후된 도시 기반시설의 정비 사업에 집중하게 됩니다. 통합된 기관은 1999년 도시기반정비공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4년 지금의 도시재생공사(UR)가 되면서 쇠퇴한 도시지역을 활성화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주력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일본은 1980년대 이후로 주택시장에서 중앙단위의 공공기관 역할을 확실히 바꾼 것입니다. 즉, 주택공급은 민간에서 전담할 수 있도록 하고, 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개발 사업을 중단한 중앙 공공기관은 최소한의 임대주택 공급과 기존 임대주택 관리, 낙후된 도심의 기반시설정비 및 노후도시 활력 제고 등의 환경정비로 그 기능을 한정한 것입니다.

주공과 토공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일본의 주택건설기능과 택지조성기능이 통폐합된 지 10여 년 뒤인 1993년, 주공과 토공의 통합이 처음 시도된 이래 16년여 만인 2009년 우여곡절 끝에 당시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지금의 LH공사가 출범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통합 당시 7000명 조금 웃돌던 직원 수는 지금 1만 명 가까이 되도록 더욱 거대해졌지요. 세종시와 혁신도시 등 추진 중인 사업 마무리와 임대주택관리 등 주거복지부문과 도시재생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당초 약속과 달리 신도시 추가 지정과 같은 대규모 택지개발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의 대량 주택공급 정책이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사실입니다. 단기간 내 대량의 주택공급은 추진과정에서 적잖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우선, 택지의 지정과 관련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죠. 대규모 사업이 동시다발로 이뤄지다 보니, 보안 유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대상지 검토 시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관련 민간전문가 의견도 참고할 것이 뻔합니다. 이러다 보니 1, 2기 신도시 추진 시에도 정보누수에 의한 투기사범을 수백 명씩 적발한 이력이 있지요.

'풍전등화' LH…전 국토부 차관이 바라본 해법은?
가톨릭관동대학교 정창수 석좌교수(행정학박사).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해외 주택공급 성공 사례를 꼽아 알려주신다면.
세계적 성공사례로 알려진 런던의 템즈강 하구의 신도시 ‘도크랜드 재개발’의 경우를 들겠습니다. ‘카나리워프’ 라는 유럽의 금융중심지가 탄생한 사업인데, 사업추진 방법 논의에만 10여 년 걸렸다고 합니다. 추진 주체는 민간의 인적자원 중심으로 구성된 도크랜드개발공사(LDDC)이고, 1981년부터 2001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추진됐습니다. 공공부문은 철도, 도로 등 기반시설지원에 한정됐습니다. 물론 LDDC는 공사완공과 동시에 해체됐습니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뉴욕의 허드슨강변의 허드슨야드 개발도 참고할 만 합니다. ‘베슬’이라는 초대형 벌집 형태의 계단형 구조물이 랜드마크로 등장하며 최근에 꽤 알려진 사업이지요. 2005년에 시작해 2025까지 추진 중인 초대형 민간프로젝트 입니다. 모두 복합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폐고가철도를 공원으로 조성한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는 사업추진 논의만 10여년 이상에, 건설기간도 3단계 걸쳐 총 8년(2006~2014년)이 소요됐습니다. 복합개발이 아니더라도 최근의 도시개발 사업들이 어떻게 논의되고 추진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여기서 보듯이 선진국들도 산업 환경의 변화로 낙후되거나 버려진 지역과 시설을 개선하며, 주택 부족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조급하게 추진하지 않고 충분한 기간 동안, 전문가나 이해관계인들과 논의 후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합니다. 지난해 파리시장 선거에서도 시내 통행속도 제한은 물론, 주차장을 녹지로 바꾸고 보행도로와 자전거도로를 추가하며, 새로운 도시 숲을 조성하는 공약이 파리시민의 호응을 얻은 바 있지요. 차도와 차량기지 등을 덮어 그 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허황된 얘기가 떠도는 우리에겐 별천지 얘기처럼 들립니다.

매 정부마다 어떤 집단의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동족방뇨 식으로 조직을 없애거나 통폐합 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많이 봐왔습니다. 현재 국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한 것은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1차원적인 단순한 방식을 떠나 어떤 근본적인 해결법을 제시해주시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부족한 주택문제를 중앙단위의 1개 공공기관에서 독점적으로 건설하는 신도시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불가피한 대책인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의 건설은 국가의 백년대계 이상의 중요한 정책 사업입니다. 특히 수도 서울의 경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OECD의 국가들도 수도권 과밀화와 도심지 낙후, 주택 부족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접근방식을 통해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인구밀도가 유난히 높고, 대규모의 아파트단지가 주거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외국의 정책을 그대로 수입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다만 아직도 서울과 근교에 단기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주택공급 물량과 추진방법에 대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보다 공개적인 논의 후 마련해야 할 것 입니다. 그 후에 시간스케줄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급하다고 대량 공급을 추진한다면 부동산 버블 붕괴와 위성도시 공동화를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따라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과 1인가구의 증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하기 때문이죠.

아울러 대도시지역에서 새롭게 지은 주택이 주변의 기존 주택보다 싸게 공급되면서 로또가 된 지 오랩니다. 무주택 가구 중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은, 당첨되지 못한 다수의 근로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줄 뿐이지요. 더 큰 문제는 당첨 후 고가의 프리미엄이 우리 사회에서 근로의 가치를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큽니다. 저렴한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는 대상을 저출산, 고령화 등에 대비한 전략적 선정기준에 따라 한정적으로 정하되, 보다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고 나머지는 시장기능에 맡겨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의 공급과 관리 또한 보다 세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가정 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공공부문에서의 독점적 대량 공급만이 주택시장의 해결 방법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습니다. 민간부문의 역량이 이미 상당한데 아직도 공공에게 의존하며 매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마침 이번 사태를 계기로 LH공사의 구조조정을 구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형태만 변형된, 다양한 기관으로 쪼개 결국엔 더 큰 괴물을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이제는 시장의 기능을 시장에 돌려주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모색하고 LH 구조조정에 반영해야 합니다.
 
지금 세종과 부산 시범도시를 비롯해 전국 70여 개의 도시에서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시티의 기본 콘셉트는 거버넌스 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아이템들을 스마트시티 조성에 반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또는 거주할 주민들과 관련 민간 기업들과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있어야 스마트시티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국 450여 곳에서 크고 작은 도시재생사업도 추진 중 입니다. 이 또한 스마트도시재생의 기법을 최대한 반영해 추진해야 합니다. 이 모든 사업의 주축이 현재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입니다. 

이제 신도시 건설 업무보다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의 공급과 관리, 스마트도시조성, 도시재생 등 시대가 요구하는 업무로 LH의 역할을 과감히 축소, 전환할 때 입니다. 시장의 경쟁력은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이 되고, 민간부문의 경쟁력이 성장할 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관련 공공기관의 신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법은 시장에서의 자율기능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국가 전체적인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너무나 단순한 논리에 입각한 대처능력이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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