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막고 싶지만, 고기는 먹고 싶어?’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축산업 반성 없이는 ‘그린뉴딜·친환경’ 논할 수 없다

기사승인 2021-05-03 05: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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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살짜리 아기부터 대기업 회장님까지, 우리는 모두 지난해 8월22일부터 적자다. 이날은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자원을 다 써 버린 시점 '생태용량 초과의 날'. 나머지 4개월은 다음해 살림살이를 당겨 쓴 셈이다. 만성 적자의 대가는 재난과 불평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과 함께 평등,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기후위기 세상을 톺아본다. 제로의 예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 팀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의논하는 시민참여 강연·워크숍 프로그램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를 기획했다.

‘기후위기 막고 싶지만, 고기는 먹고 싶어?’
황윤 감독의 작품 '잡식가족의 딜레마' 주인공 '돈수'. 황 감독은 돈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가축이 강아지, 고양이, 자신의 아들과 다름 없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진=황윤 감독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그린뉴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어요. 정부와 환경시민단체들이 집중하는 분야는 디지털 기술과 에너지 전환입니다. 먹거리 전환으로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 안건은 외면하고 있어요. 질병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축산업의 실태를 아무도 직면하려 하지 않죠.”

고기를 즐기면서 보건·환경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황윤 감독은 공장식 축산업을 지속하는 세상에서 감염병과 기후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1일 황 감독의 ‘사랑할까, 먹을까’ 강연을 통해 고기의 이면을 들춰봤다. 황 감독은 동물권, 인권, 페미니즘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 중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와 ‘광장의 닭’등을 제작했으며, 책 ‘사랑할까, 먹을까’를 썼다. 강연은 광주시 동구의 예술가 커뮤니티 ‘바림’과 온라인에서 동시 진행됐다. 

동물권 얘기, 이 시국에 ‘굳이’ 해야됩니다

감염병, 기후변화, 육식은 전혀 관련 없는 주제로 보이기 쉽다. 축산업이 환경문제를 양산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사회적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그린뉴딜이 발표되는 와중에도 밀집식 축사에서는 수십만 톤의 가축분뇨가 배출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국에도 가금류 농장에서는 어김없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기승이었다.

황 감독은 “세상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이 만연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의제에 위계가 있다는 사고방식은 큰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중산층 남성을 구하고, 평범한 여성을 구하고, 장애인을 구하고, 제3세계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동물과 환경을 구하는 순서가 정당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와 환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시급성을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황 감독의 견해다.

공장식 축산업에선 고기와 함께 ‘질병·학대·공해’가 나온다 

현대 축산업에서는 고기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황 감독은 우리가 얻는 고기의 부산물이 질병·학대·공해라고 설명했다. 동물을 빽빽하게 채워넣은 밀집식 축사에서는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확산한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구제역이 확산하면서 전국의 소와 돼지 약 350만마리가 살처분됐다. 국내 총 사육두수의 30%에 달하는 규모였다. 당시 경제적 피해는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12월 전북의 오리농장에서 발생한 AI가 인근 농장으로 확산해 1개월간 가금류 약 990만마리가 살처분됐다.
 
살처분은 동물들을 생매장했다는 의미다. 황 감독은 “무미건조한 말로 표현되지만, 심각한 동물학대”라고 말했다. 살처분은 면한 동물도 학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밀집식 축사는 위생관리가 어려워 세균과 해충이 ‘당연히’ 창궐한다. 대장균, 살모넬라균, 캄필로박터균 등에 노출된 동물을 양질의 고기로 만들려면 수십가지 약품을 주사한다. 동물들의 임신과 출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발정제와 분만촉진제가 사용된다. 황 감독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전 국민이 공분했을 것”이라며 “대상이 소, 돼지, 닭이라는 이유로 동물학대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기후위기 막고 싶지만, 고기는 먹고 싶어?’
황 감독의 작품 '광장의 닭' 중 한 장면. 밀집형 계사에서 닭 1마리당 주어지는 면적은 A4용지보다 작다. 사진=황윤 감독

축사 내 동물학대는 인간학대로 번지기도 했다. 살처분 작업을 맡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얻는다. 2010년 구제역 유행 당시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군인들은 이후 미술치료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았다. 살처분 작업을 관리했던 축협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공무원과 군인을 동원했던 작업은 현재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손에 맞겨졌다. 황 감독은 사회적 약자를 향해 ‘죽임의 외주화’가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산업 폐기물이 인간을 위협하는 사례도 흔하다. 제주도에서만 하루에 2800톤의 돼지분뇨가 배출된다. 한국에서 연간 발생하는 가축분뇨는 총 4846만톤으로 추정된다. 공장제 사료를 먹은 가축의 분뇨는 퇴비로 사용될 수 없으므로 모두 산업 폐기물이다. 2017년 제주시 한림읍에서는 한 양돈업자가 지하수로 이어지는 ‘숨골’에 돼지 분뇨를 무단 배출해 적발됐다. 재판부는 식수원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익산시 왕궁면에는 축산단지가 들어서며 저수지 규모의 분뇨 집결지가 생겼다. 인근 주민들은 악취와 위생악화로 고통을 호소했다. 

축산업 반성 없이는 ‘그린뉴딜·친환경’ 논할 수 없다

황 감독은 축산업과 고기 소비 행태가 변화해야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탄소중립은 탄소를 흡수하고, 배출을 줄여 최종적인 배출량이 0이된 상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산업 등에 친환경 기술을 접목한다는 것이 전 세계 국가들의 전략이다. 주요 탄소배출 산업으로 축산업을 지목한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UN세계농업기구(FAO)는 2006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 가운데 18%는 축산업에서 발생한다고 집계했다. 같은 통계에서 교통수단은 13.5%를 차지했다. 3년 후 환경연구NGO 월드워치연구소는 FAO가 가축두수를 축소하는 오류를 범했다며 2009년 다시 통계를 발표했다. 월드워치연구소의 집계 결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축산업은 51%, 교통수단은 13%를 차지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증가한 인구수와 고기 소비량을 감안하면,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축산업의 대규모 전환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과학계에서도 축산업과 고기 소비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앞서 2019년 11월 전 세계 153개국의 과학자 1만1000명이 국제과학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즉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하며, ‘육류소비 감축’을 즉각적인 변화 과제로 꼽았다.

‘기후위기 막고 싶지만, 고기는 먹고 싶어?’
황윤 감독이 밀집식 돼지 축사 방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제로의예술 ‘사랑할까, 먹을까’ 강연

고기 중독 사회,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

황 감독은 공장식 축산업을 소규모 농장 사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고기반찬이 있어야 성의있게 차린 밥상’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육식에 과몰입하고 있다. 1년에 소비되는 육류 총량을 감당하기 위해 공장식 축산업이 유지되고, 사람들의 육류 소비량도 매년 줄지 않는다. 축산업 개선은 물론, 탄소중립도 실현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일상 속에서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황 감독의 제안이다. 육류 소비를 줄이려면, 채식을 실천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채식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 회식을 할 수 있고, 학생들이 급식에서 채식 선택지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과 공격도 사그라들어야 한다. 황 감독은 인권운동가이자 작가 앨리스 워커의 말을 인용했다.

“흑인이 백인을 위해, 여성이 남성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닌 것처럼 동물도 우리를 위해 창조되지 않았어요. 기후위기, 감염병, 동물권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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