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죽어야 바뀌는 법

[쉬파리골목 화재참사 21주기] ①군산 대명동·개복동 화재 참사, 감금·착취 성매매 공론화

기사승인 2021-09-19 07:00:19
- + 인쇄
여성들이 죽어야 바뀌는 법
이미지=한성주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여성 19명이 죽자 국가가 성매매범죄 방치를 멈췄다.
 
21년 전 오늘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방지법)이 마련됐다. 2000년 9월19일 오전 9시경 전북 군산시 대명동 성매매 집결지 ‘쉬파리골목’의 3층짜리 건물에 불이 났다. 2층 부엌에서 누전으로 불이 붙었고, 같은 층 30평 남짓 공간을 태우다가 30분 만에 진압됐다. 그런데 화재 규모에 비해 인명피해가 컸다. 불법적으로 개조된 2층 쪽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20대 여성 5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사망한 여성들은 감금 상태로 지낸 성매매 피해자였다. 이들을 착취하던 업주는 창문에 쇠창살을 설치하고 커튼을 달아 실내를 밀폐했다. 업소의 문은 바깥에서 걸어 잠가 피해 여성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불이 나자 여성들은 업소 밖으로 제때 대피할 수 없었다. 가장 어린 사망자는 20세였다.

1년6개월 뒤 여성 14명이 또 숨졌다. 2002년 1월29일 쉬파리골목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군산시 개복동 성매매업소 ‘아방궁’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난 시각은 정오였고 24분 만에 진화됐지만, 여성들은 출입구 앞 계단에 뒤엉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화재 현장의 창문은 모두 두꺼운 판자로 막혀 있었고, 환기시설도 없었다. 출입구는 바깥에서 잠겨있었다. 

두 참사를 통해 성매매 업계의 실태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이전까지는 아무도 성매매를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이 법률은 1961년 제정돼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문화로 여겨졌다. 성매매 업소 단속과 적발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쉬파리골목 반경 100m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다. 당시 경찰들은 업주에게 ‘떡값’ 명목으로 뇌물을 받고 성매매를 눈감아줬고, 단속 정보를 유출했다. 화재 사건 이후까지도 업주에게 뇌물을 받고 정보를 유출한 경찰들이 붙잡혀 구속됐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고민도 시작됐다. 당시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여성폭력 문제는 성범죄와 가정폭력이었다. 성매매는 부도덕한 여성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행위로 인식됐다. 성매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지도 않았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화재로 사망한 여성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윤락녀’로 보도됐다.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을 구조하는 전국단위 조직은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가 유일했다. 

군산여성의전화를 필두로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입법 요구에 나섰다. 성매매로 이득을 보는 모든 이들을 처벌하고, 성매매 유입 차단과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필요했다. 윤락행위등방지법은 오직 ‘성행위’만 윤락행위로 규정해 실제 성매매 업소에서 자행되는 성착취 행위들을 포괄하지 못했다. 성구매자와 판매자를 처벌할 뿐, 이외에 성매매로 이익을 챙긴 이들에게 적용할 처벌 규정은 없었다. 성매매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도 미비했다.

성매매를 방치한 국가는 고소를 당했다. 대명동 화재 당시 사망한 여성들의 유족 13명은 국가와 군산시, 성매매업주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성매매를 단속하지 않고, 성매매 업소의 불법적 개·보수를 막지 않아 여성들이 목숨을 잃게 한 책임을 묻기 위한 시도였다. 대법원은 국가와 업주들이 유족 측에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인정된 최초 사례다.

2004년 3월22일 성매매방지법이 제정, 같은 해 9월23일부터 시행됐다. 이 날을 기해 업주, 권유자, 알선자, 구매자, 건물·토지·장소 제공자 등 성매매 여성을 둘러싼 착취자 모두가 범죄자로 규정됐다. 성매매 여성이 더는 이들과 싸잡혀 ‘윤락녀’로 치부되지 않게 됐다. 국가는 이들의 범죄수익을 몰수 추징하고 피해 여성의 회복과 자립을 도울 의무가 생겼다. 윤락행위등방지법 재정 이래 43년 만의 변화였다. 그동안 19명 이상의 피해 여성들이 죽은 끝에 법이 바뀐 것이다. 법이 바뀌어도 보호받지 못한 여성들 [쉬파리골목 화재참사 21주기] ②에서 계속

취재 도움= 민은영 군산여성의전화 대표,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2010-2014 여성인권판례비평 사법정의와 여성Ⅲ>,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국제형사정책동향<성매매재범방지대책과 ‘존 스쿨(John school)’>

castleowner@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