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재해, 연안침식①] 파도의 역습

정진용 / 기사승인 : 2021-10-26 06: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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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시 사천진해변이 침식됐다. 묻혀있던 바위가 드러나고, 전시물을 지탱하던 콘크리트 하단만 위태롭게 남았다. 모래가 없는 해안은 안전에 취약해 관광객 출입을 막은 상태다.   사진=정진용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여기서 30년 장사하면서 처음 봤다니까요”

완만하던 모래사장에 가파른 단차가 생겼다. 깊이 묻어뒀던 철근 구조물과 기초 사석(방파제 내부에 투입하는 큰 돌)이 그대로 드러났다. 횟집 수조에 바닷물을 대던 푸른색 관도 고개를 쳐들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설치됐던 흔들의자는 사라지고, 콘크리트 하단만 위태롭게 남았다. 일부 구간은 주황색 안전띠를 이중으로 쳐 관광객 접근을 막았다. 지난 19일 강원 강릉시 사천진해변 풍경이다.

사천진해변은 경포, 하평해변 등과 함께 지난달 연안 침식 피해를 입었다. 제12호 태풍 ‘오마이스’가 지난 뒤였다. 연안 침식은 파도, 해수면 상승, 시설물 설치 영향으로 연안 지표가 깎이고 모래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모래가 쓸려 나간 자리에 거친 암석이 흐트러져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사천진해변 앞에서 30년 넘게 횟집 장사를 한 채모(62·여)씨에게도 믿지 못할 풍경이었다. 매일 보는 바다인데도 사진을 찍어 둘 정도였다. 계단을 받치던 모래가 빠지고 바닷물이 들이쳤다. 채씨는 파도가 거센 편도 아니었는데 의아할 따름이라고 했다.

성큼 다가온 파도에 주민은 위협을 느꼈다. 해변 앞 카페 사장 A씨는 근심이 늘었다. 자연의 위력이 삶의 터전까지 쓸어갈지 몰라서다. 체감상 백사장 폭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A씨는 지반 밑으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해안도로가 꺼질까 걱정이다.

텅 빈 조개구이 식당을 지키던 사장 B씨는 세찬 파도가 턱밑까지 들이치는 기분이라고 했다. 바위가 날카롭게 드러난 해변을 보고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관광객이 해변에 들어갈 수 없으니 장사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1년 전과 현재 사천진해변 모습을 비교한 사진. 강원대 삼척산학협력단 

연안은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 많은 해양 생물의 서식처다. 지난 2014년 환경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0종의 식물, 32종의 포유류, 5종의 조류, 3487종의 곤충, 135종의 어류 등이 연안에 산다. 인간에게는 관광지이자 여가활동 공간이다. 무엇보다도 연안의 해안 사구(모래가 바람에 날아가 쌓여 이루어진 언덕)는 파랑(파도) 에너지를 줄이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 재해 예방에 필수적이다. 폭풍해일이나 쓰나미, 태풍 등 자연재해 일차 저지선인 모래가 사라지면 피해는 인간 몫이다. 

국토 유실은 물론 재산상 피해도 불러온다. 높은 파도가 주택에 균열을 만들고, 해안 도로를 무너뜨리는 등 시민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이번 연안 침식으로 강릉시는 경포해변 일부 산책로를 철거했다. 산책로 50m 구간의 기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정동진 해변을 따라 운행하는 레일바이크 선로 인근 모래가 깎여 나갔다. 이곳은 비슷한 사고가 반복해 일어난다. 2016년에는 경북 울진군에서 높은 파도가 해안도로와 인근 옹벽을 덮쳤다. 벽이 무너지고 도로가 가라앉았다. 41억원 규모의 피해였다. 

백사장 곳곳에 경사 높은 단차가 생겼다.   사진=정진용 기자

피해는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지난 6월 해양수산부는 해안선 총 길이가 지구 둘레에 약 37%에 해당하는 1만5282km라고 발표했다. 2014년 대비 319km(2.1%)가 증가했다. 연안매립, 방파제, 해안도로 개발에 따른 것이다. 2019년 해수부 실태조사를 보면 국민 약 28%(약 1400만명)가 연안에 거주한다. 국가산업단지 78%, 수출입물동량 98%가 연안에 있다. 중요한 경제 가치다. 또 연간 1억2000만명 이상이 바닷가를 찾는다. 

장성열 강원대 삼척산학협력단 선임연구원은 “연안 침식 원인은 다양하다”면서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파도 강도가 세진다. 저수지, 댐 설치로 인한 하천 모래 유입량 감소와 해안구조물 축조도 원인”이라고 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유달리 강도 높은 너울성 파도가 빈번했고 해안선에 사선으로 들어오는 파향(파도 방향)이 우세해 모래가 더 깎여나갔다는 설명이다. 장 선임연구원은 “연안 침식은 전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해안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인호 강원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역시 “지난달 초 연안 침식이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학자들이 경고해 온 기후변화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