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폐지하라” 제자 죽음에 나선 교사들

기사승인 2021-10-25 15: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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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 폐지하라” 제자 죽음에 나선 교사들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소속 직업계고등학교 교사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여 현장실습 폐지를 촉구했다.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직업계고등학교 교사들의 현장실습 제도를 비판하며 폐지를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는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실습 폐지와 직업교육 정상화를 강조했다. 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현장 교사들이 통곡한다. 국가의 무책임에 또다시 희생된 현장실습생 고(故) 홍정운 학생의 명복을 빈다”며 “현장실습은 이미 약으로 치료 불가능한 상태다. 교육을 가장한 불법적 학생노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실습은 직업계고 학생 등이 졸업 전 업무를 배우고 실습하는 제도다. 직업계고 3학년 학생들은 전체 수업 일수의 3분의 2를 마친 경우 현장실습에 나갈 수 있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대개 10월부터 업체에서 일한다. 졸업 후 취업 전제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주요 취업 통로다.  

“현장실습 폐지하라” 제자 죽음에 나선 교사들
현장실습 사고 현황. 이희정 디자이너 

직업계고 교사들이 현장실습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실습에 나선 학생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생 홍정운군은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레저업체에 잠수작업 중 사망했다. 미성년자에게는 잠수작업을 시켜서는 안 된다. 안전장비도 미비했다. 지난 2017년에는 제주 생수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군이 사고로 숨졌다. 같은 해에는 홍수연양이 콜센터 업무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세상을 떠났다. 2016년에는 김동균군이, 2015년에는 김동준군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교육부는 ‘학습형 현장실습’을 추구하지만, 현장에 학습은 없다. 업체와 학교는 협력해 현장실습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실상은 다르다. 프로그램 구성은 교사의 몫이다. 업체는 프로그램을 이행하지 않는다. 업체 내 현장실습생 교육담당자는 대부분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정보형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은 “업체에서 프로그램을 따르거나 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기업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프로그램에 적힌 업무 대신 허드렛일이나 잔심부름을 했다는 학생들이 다수”라고 지적했다.

김홍래 대구 달서공고 교사도 “1주 차에 밀링, 2주 차에 선반 및 안전교육 등 업체 특성에 맞춰 교사들이 프로그램을 구성하지만 업체에서는 이를 시행하지 않는다”면서 “현장실습을 통해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대다수 직업계고 교사가 공감하는 사실”이라고 이야기했다.

업체에서 협약대로 현장실습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항의 대신 학생을 타일러왔다는 반성도 있었다. 김 교사는 “현장실습생에게 잔업을 시켜서는 안 되지만 업체에서 지키지 않는 일도 잦다”면서 “학생이 해당 업체에 취업을 원하면 교사 입장에서는 ‘그런 게 사회다. 원리원칙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나쁜 것들을 답습하고 순응하도록 하는 역할을 교사가 해온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장실습 폐지하라” 제자 죽음에 나선 교사들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서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여수의 한 특성화고교 3년 홍정운 군의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직업계고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도 강조했다. 직업계고에서는 3학년 때 실습 등 전문교과 과정을 주로 가르친다. 그러나 2학기에는 서류 지원, 면접 준비 등을 포함한 현장실습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동헌 광주 전자공업고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3학년 2학기 교육을 마치지 못하고 현장실습에 가게 되면 (공업 관련 전문지식이) 인문계고 졸업생과 차이가 없을 정도”라며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현장실습 폐지하라” 제자 죽음에 나선 교사들
고 홍정운군이 숨진 장소에 홍군의 친구들과 시민사회단체가 국화꽃을 바쳤다. 이소연 기자 

현장실습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직업계고에서 3학년 2학기 11월 말까지는 기업체 취업 관련 모든 활동을 금지한다. 고용노동부에서 인증한 취업 적합 업체에 한해 12월부터 취업 희망 학생들의 취업 활동을 진행한다. 취업이 확정된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한다. 겨울방학 기간에는 학교장의 동의를 얻어 입사 사전 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허락한다.

직업계고 교사들은 정부의 주체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또는 교사에게 현장실습 안전관리 책임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1일 현장실습 산업안전담전담관 제도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교감 또는 현장실습 담당 부장교사가 간단한 연수 후 현장실습 안전사고 예방 등을 지도한다는 내용이다.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은 “교사는 산업체 현장 안전과 관련 비전문가다. 형식적인 연수로 전문성이 커질 수 없다”며 “단발성 정책으로 안전한 현장실습을 보장하겠다는 발상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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