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 융릉과 건릉 [신형환의 길...멋 따라 맛 따라]

-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홍씨 합장릉인 융릉, 정조와 그 부인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 보며 파란만장 역사 떠올려
- 산책길 따라 걸으며 가을감상과 역사공부 ‘일석이조’

신형환(성숙한사회연구소 이사장, 경영학 박사)

입력 2021-11-20 12: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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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화성 융릉과 건릉 [신형환의 길...멋 따라 맛 따라]
신형환 이사장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으로 이사를 와서 화성 8경중에서 1경인 융릉과 건릉을 아내와 함께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려고 화성비봉 LH 아파트에서 자동차로 25분 달려 도착했다. 주차장이 잘 정비되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관람료는 1인당 1,000원이고 65세 이상은 무료였다. 화성시민은 500원 관람료를 내면 된다. 코로나 방역수칙을 준수하려고 체온을 측정하고 QR 코드를 찍고 입장하였다. 문화재청 궁릉유적본부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에서 제공하는 ‘화성 융릉과 건릉’ 안내 유인물을 가지고 어떻게 관람하고 어떤 산책로를 걸을 것인가를 결정하였다. 먼저 역사문화관에서 연표, 융릉과 건릉의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왔다. 글을 쓸 때 필요한 자료로 이용하려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융릉과 건릉에 관한 내용의 일부를 유인물에서 인용하였다. 

우리 부부는 여유가 있어 가장 긴 A 코스를 선택하여 천천히 걸으며 가을 단풍과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11월 7일 전북대학교 임학산림과학과 박종민 교수가 강의한 ‘숲탐방을 통한 생태맹 극복’의 내용이 떠올라 숲길에서 음미하며 교감하며 천천히 걸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활엽수와 관목을 보면서 더 공부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내표지판을 보면 A 코스는 50분 정도 소요된다고 나왔는데 우리는 1시간 30분 이상 걸렸다. 먼저 추존 장조와 헌경왕후의 능인 융릉으로 가서 역사적 내용을 살펴보며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가 얼마나 나쁜가를 생각하였다. 장조(1735~1762)는 영조와 영빈 이 씨의 아들로 태어난 다음 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가 15세가 되어 1749년부터 영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다. 그러나 부자간 대립과 갈등으로 불화가 심하여 병을 얻었다. 또한 노론세력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1762년 왕세자의 신분에서 폐위되어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경기 화성 융릉과 건릉 [신형환의 길...멋 따라 맛 따라]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홍씨 합장릉인 융릉. 사진=신형환 이사장.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헌경왕후는 영풍부원군 홍봉한의 차녀 1744년 왕세자빈에 책봉되었다. 남편인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 혜빈에 봉해졌다.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며 혜경궁이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회고록인 『한중록』을 직접 쓰기도 하였다. 원래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서대문구 배봉산에 무덤을 만들어 수은묘라고 하였다. 정조가 즉위한 후 아버지의 무덤을 화산으로 옮겨 이름을 현륭원이라고 불렀다. 1815년 헌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화산 현륭원에 합장하였다. 1899년 원을 능으로 격상하여 오늘의 융릉이 되었다. 융릉에서 사진을 몇 장 촬영하고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융릉과 건릉을 찾아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서 좌우 소나무와 활엽수가 많아 여름에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햇빛을 가려주어 여성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중간에 긴 의자가 많이 있어 휴식을 취하며 대화하거나 상념에 잠길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내년에 자카르타 국제대학에 가서 봉사의 삶을 살아가려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아내와 어떻게 살며 봉사할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구나 노년에는 건강과 행복을 추구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봉사와 배움, 동행과 동참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다짐했다. 영조와 장조의 불화를 돌아보며 아들 성진과 영진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며 성숙한 관계로 발전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경기 화성 융릉과 건릉 [신형환의 길...멋 따라 맛 따라]
정조와 그 부인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

1시간 후 조선 22대 정조와 그 부인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에 도착하였다. 정조(1752~1800)는 장조와 헌경왕후 홍 씨의 둘째 아들로 1759년에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 1775년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보았다. 영조가 세상을 떠난 1776년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당파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하였다. 또한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 진흥에 매진하였고, 친위부대 장용영을 설치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수원 화성을 건축하며 여러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효의왕후 김 씨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 왕세 손빈에 책봉되어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정조의 후궁 소생인 왕세자(순조)를 양자로 입양하여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정조와 관련된 역사 소설을 보면 정조가 4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이유를 독살에 의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개혁을 지향하며 국정을 이끈 정조를 제거하려고 음모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본다. 지금도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세력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반복을 되새겨보았다. 중심 세력과 주변 세력간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해결할 것인가를 정치인들은 고민해야 한다. 정권을 잡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국민이 얼마나 많은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떤 정치철학과 비전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를 찾아볼 수 없어 참으로 안타깝다. 

건릉을 끝으로 관람을 마치고 산책길을 따라 내려왔더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주변 맛집을 검색하니 평점이 높은 식당이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식당이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휴식 시간으로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밥상에 가서 먹으려고 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른 식당을 찾아보았다. 주차장 길을 건너 ‘세브마니아’에 가서 월남 쌈으로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세부마니아에서는 월남쌈 샤브샤브와 샐러드 바를 먹을 수 있다. 자연의 신선함을 담기 위한 당일 배송, 한우 1등급 이상 또는 호주산 청정우를 사용한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농부의 정직한 마음을 담고 쉐프의 정성을 담은 맛있고 깨끗한 요리를 원칙으로 한다는 사장의 자세가 보기에 좋았다. 야채를 좋아하는 아내가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어느 음식이라도 잘 먹는다. 오늘도 월남쌈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행복감에 빠져들어 갔다. 후식으로 요거트에 각종 씨앗을 넣어서 먹으니 맛이 참으로 좋았다.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나는 아주 부드러운 원두커피 한 잔을 마셨다. 아내와 나는 눈이 오면 화성 융릉과 건릉에 다시 오기로 하고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가족과 함께 하길 권유한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