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록 “엄마 박정자보다 인간 박정자를 연기했어요” [쿠키인터뷰]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12-09 06: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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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신록.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5일 후 지옥에 간다면 그동안 무엇을 할까. 넷플릭스 ‘지옥’에서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은 박정자(김신록)는 누구보다 바쁜 5일을 보낸다. 새진리회와 소도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상담을 받고, 30억 시연 생중계 계약을 성사시킨다. 재빠르게 아이들을 캐나다에 보내는 등 이후 계획도 세운다. 가장 혼란스럽고 끔찍한 시간이 됐을 시간을 기회라고 여기는 박정자의 태도는 ‘지옥’에 현실성을 불어넣는다. 실제 드라마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면 ‘정말 박정자처럼 할 수도 있겠다’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자는 드라마 전개를 위해 소비되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지옥’의 세상도 박정자를 기억하고,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도 박정자를 기억한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배우 김신록은 ‘‘지옥’ 전체를 관통하는 연기’라는 평을 봤다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놀랍다”며 환하게 웃었다. 중요한 인물이 아니어도 평면적인 캐릭터로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

“박정자는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는 엄마고, 평범한 시민이잖아요. 죽음에 대한 공포나 자식을 떠나게 된 슬픔 정도만 부각되는 평면적인 캐릭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구조에서 제가 해내야 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모성을 연기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인간을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가 가진 조건 중에 자식이 있을 뿐이죠. 박정자는 너무나 지키고 싶지만, 지켜낼 수 없는 걸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지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두렵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이나 품위를 지키려는 복합적인 모습이 잘 드러났으면 싶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5일이 비극적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액티브하고 바쁠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두려운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은 박정자의 심경은 여러 장면에서 드러난다. 특히 집에서 계약을 마무리하는 도중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혼내는 장면은 김신록의 애드리브로 완성됐다. 아이들을 끌어안고 “이건 기회”라고 대사를 하는 설정이 아이들을 방에 들여보내는 설정으로 갑자기 바뀌면서 나온 장면이다. 김신록 역시 좋아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 장면이 복합적으로 좋은 순간을 잘 만들어낸 것 같아요. 아이들을 훈육하면서 내가 잘못 기르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모습 같고, 내 못난 모습을 아이들에게 못 보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거든요. 공항에서 민혜진(김현주) 변호사에게 애들과 인사도 못하고 보냈다고 말하는 장면도 즉석에서 하게 됐어요. 처음엔 너무 잘 됐다며 주저앉아 오열하는 연기를 생각해 갔거든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이 힘이 빠져서 차에 기대는 설정을 제안해주셔서 대사도 몇 개 더 하게 됐어요. 그 대사와 제가 아이들을 혼내는 장면이 연결되면서 힘이 생긴 것 같아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지옥’에서의 연기로 주목받은 김신록은 서울대 지리학과 출신이라는 학력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는 “학부에 대해선 언급할 일이 없어서 잊고 지내다가 새삼 회자가 돼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대학교에서 연기 강의를 10년이나 하기도 했다.

배우 김신록.   저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학 강의를 하다가 그만두고 전업 배우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가르치는 걸 잘했어요. 나중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어려워진 시기가 왔죠. 제가 아는 걸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힘을 잃었던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은 모르는 걸 대면하는 일이잖아요. 모르는 걸 어떻게 해결할지 계속 탐색하는 일이니까 계속 열려있고 창발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살아있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신록은 JTBC ‘괴물’과 ‘지옥’을 같은 시기에 촬영했다. 바쁘게 양쪽을 오가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순간도 많다. 그래도 다양한 일을 함께 하면 연기가 평면적으로 되지 않아서 좋아한다고 했다.

“전 연기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요. 연기의 비밀이 뭘까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큰 역할을 하고 싶다거나 특정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어요. 특색 있는 작은 역할부터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역할까지, 극단적인 캐릭터부터 일상적인 소소한 캐릭터까지 두루두루 소화할 수 있는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인물 자체를 보여주는 것 보다 인물과 세계의 관계가 드러나게 연기하고 싶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