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현실’사이 [기자수첩]

한상욱 / 기사승인 : 2021-12-09 0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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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기자

한상욱 기자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켜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수상했다.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김연아는 이어 각종 그랑프리에서 모두 1위를 석권하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ISU 그랑프리 파이널 3회 우승을 통해 피겨 스케이팅의 여자 싱글 부문에서 4대 국제 대회(동계 올림픽, 세계 선수권, 4대륙 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의 그랜드 슬램을 사상 최초로 달성했다.

또한, 2014년 동계 올림픽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해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최초로 올포디움(All Podium)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의 국내 현실은 그런 전설이 나타난 것과는 정반대로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에게나, 겨울철 종목을 치르는 선수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적어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국내에서 치러지기 전까지는(최소한이다) 말이다.

자신에게 맞는 스케이트를 구할 수 없어 일본으로 구입하러 가야 했으며, 난방이 되지 않는 스케이트장은 말할 것도 없고(사치수준) 일반인, 아이스하키 선수들, 스케이트 선수들 모두가 한꺼번에 이용하는 아이스링크에서 연습했다. 부상의 염려나 컨디션은 따질 것도 없이 연습장도 부족했고 빙질도 좋지 않은 야외스케이트장(그마저도 있다면)도 이용해야 했다.

그렇기에 더욱 더 해외로 나가야만 그나마 여건이 나은 아이스링크에서 연습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자비로 가야하기 때문에 넉넉지 않은 생활형편을 감안하더라도 빚을 지고서라도 가야만 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동계종목 선수뿐만이 아니라 구기종목(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선수들을 포함해 모든 운동선수가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체육계의 뒷받침에는 항상 부모와 가족의 희생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오늘날 체육계의 현실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과 열악한 지원체계, 부족한 스포츠육성 예산 등은 이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 분야에서 스타가 나오면 그 스타가 오히려 사비를 털어 재단을 만들고 꿈나무를 육성하는 것으로 체육계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언론과 방송들은 전설의 시작과 함께 스타의 일대기를 앞다퉈 보도한다. 세계 속 한국을 알리는 위대한 선수로 무엇을 본받아야 할 지, 어떻게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현실의 열악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면 “아,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이뤄냈구나”라는 짤막한 자막과 함께 스쳐 지나간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아니 이제는 선진국이라 말하는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아직도 ‘개천에서 용 나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 그래야만 인간승리, 정신승리로 여겨서일까.

착실히 기초를 튼튼히 하고 훈련할 수 있는 시설들을 종목별로 만들어 힘들게 외국으로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부모와 가족의 희생이 아닌, 가능성과 노력이 있다면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고 육성해줄 수 있는 그런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실력과 능력을 겸비하고서도 돈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스포츠를 포기하는 현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존경하는 ‘전설’이 우리의 ‘현실’을 애처롭게 보는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 세계 각국의 외교적 사안이 되고 있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를 접하고 떠올린 생각이다.

한상욱 기자 swh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