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41)

렘브란트의 이 작품은 왜 ‘야경’이라고 잘못 불려졌는가?

입력 2024-06-10 14: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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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41)
렘브란트, 야경(The Nightwatch, 夜警), 1642, 캔버스에 유채, 437x363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출처: 위키디피아)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41)
2021년 복원 전, 바니시(Varnish)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라서 어둡게 보인다.

이 작품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함께 거론되는 전설적인 작품이다. 

원제는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이나, 흔히 ‘야경 The Nightwatch’이라 부른다. 그러나 원 제목과 달리 낮이 배경이다. 유화, 수채화, 아크릴 등으로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마지막 과정으로 그림을 보호하고 균일한 광택을 주기 위해 바니시(Vanish)를 바른다. 

먼지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외선으로 인한 탈색을 막기 위한 후처리이다. 이 바니시가 1800년경부터 더욱 어둡게 변했다. 

또한 습기로부터 보존을 위한 건조제로 쓰인 납기름 성분이 작품 전반에 발라져 있다는 사실을 2023년에 밝혀냈다. 물감에 납성분이 들어갔을 것이라 추정은 했지만 바탕 칠 전에 전체적으로 칠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아마씨유나 양귀비유의 성분이 황화수소와 결합하며 황화납이 되어 전체적으로 어둡게 보인다. 

실제로 이때부터 민병대가 야간순찰을 돌기 시작하며 '야경'이라는 제목이 굳어졌다. 그러나 막상 반닝 코크의 부대는 밤에 활동하지 않았다.

렘브란트의 도제인 반 호호스트라텐은 “이 그림을 좀 더 밝게 처리했으면 좋았을 걸!”라고 아쉬워했다. 1940년 이 작품을 복원하며 바니시가 제거되자 렘브란트의 빛나는 색이 되돌아왔다. 

이 작품은 사람 한 명 한 명이 실제 크기여서 가로 437 x 세로 363cm로 매우 크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명예의 전시실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1642년 완성된 이 작품은 화승총단 건물에 걸렸다. 16명의 등장인물이 100길더씩 1,600길더를 그림 값으로 지불했다.

1715년경 '야경'은 시청으로 옮겨지며 장소가 협소해 그림이 잘려 나갔다. 2019년 인터넷 생중계로 복원을 시작하여 2021년 복원을 마쳤다.

렘브란트는 집단초상화를 그려온 이전의 모든 공식을 거부하고 역사화를 그려온 역동적인 힘으로 가득 찬 새로운 드라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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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야경

렘브란트는 1640년경 화승총단의 새 건물과 사격장 준공을 기념하는 화승총을 든 병사들을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시의회와 길드, 민병대, 구빈원과 고아원의 이사 등이 통치하는 공화정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초상화가는 절대군주가 임명하는 궁정화가와 같다. 그러므로 집단초상화는 ‘네덜란드 회화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

집단초상화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 첫째, 개인을 실물처럼 재현하는 일이다. 둘째, 대위는 중위보다 우월하고 기수보다 뛰어나 서열이 있어야 했다. 셋째, 연회를 하든지 함께 있는 모습이어야 했다. 넷째, 민병대를 결속시키는 동지애와 정의감까지 이미지화해야 했다. 

렘브란트는 화면의 수평으로 인물들을 배열하는 대신 뒤에서 앞으로 화면의 축을 옮겨 전진하도록 했다. 새로운 대안으로 반닝 코크 부대가 안에서부터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본부 입구 아치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이제 작은 다리를 건너 시가행진을 하려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모두 거짓이다. 암스테르담 민병대는 스페인과 전투한 적이 없다. 전부 직업군인과 용병이 수행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이 번영할수록 시민들은 비상시에 도시와 조국을 위한 결의를 보여주려 했다. 

언뜻 보면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코크 대위를 중심으로 네 그룹으로 나뉜 인물 배치는 엄청난 활력을 내뿜는다. 이것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에 의해 더욱 강화된 것이다. 다빈치도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어 내러티브를 갖게 했다. 

유명 미술관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하기 위해 예술품을 훼손하는 반달리즘(Vandalism) 사건이 종종 뉴스에 나온다. 그래서 방탄 유리 안에서 복원 작업을 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요즘 트렌드이다. 그러나 케이스 때문에 자세히 보는 건 고사하고 관람객이 어찌나 많은 지 전체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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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 부대장 로이텐부르크 중위 뒤에서 한 대원이 투구를 쓴 채 총의 약실에 화약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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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밝은 색은 가까이, 어두운 색은 멀리’에 칠한다는 색과 원근의 규정도 뒤엎었다.

민병대 대장의 양말에 매달린 술의 방향, 들어올린 구두 그리고 왼팔의 그림자는 앞으로 걸어나오며 전진을 명령하고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지만, 그는 몹시 어둡게 채색되었다. 대신 렘브란트는 캔버스 중앙에 서 있는 암스테르담 시장이며 민병대 대장을 빨간 어깨띠로 두드러지게 그렸다. 

코크 대위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오른손엔 칼을 들고 왼손을 펼치며 ‘전진’을 명령한다. 그래서 단축법으로 그린 대장의 팔과 부대장의 미늘창은 화폭을 뚫고 나올 듯하다. 또한 대장 팔의 그림자가 로이텐부르크 중위의 옷에 선명하다. 그림자의 위치는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설명하는 열쇠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엄격한 캘빈파 개신교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고, 렘브란트 역시 개신교 신자였다. 성당을 장식하는 장식과 그림을 전부 파괴하는 성상파괴운동을 거치며, 네덜란드 사람들은 많은 색과 알록달록한 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한 흑과 백, 강한 명암의 대조 그리고 회색의 명암을 모델링에 사용하여 조각처럼 그리는 검소한 그리자이유(Grisaille)가 대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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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부분.

또한 언뜻 보면 한가지 색으로 보일 정도로 미묘한 차이의 배색인 카마이에(Camairu) 배색을 사용했다. 17세기에 렘브란트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용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에서 강렬한 색을 찾기는 쉽지 않다. 렘브란트가 빨간색을 사용했다면 이는 등장인물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네덜란드의 개신교와 가톨릭의 연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 바로 렘브란트의 ‘야경’이다. 

이들은 비록 직물 상인이지만, 중위인 로이텐부르크는 노란색 예복에 흰 띠로 귀족같이 차려 입었다. 그는 코크 대장과 함께 미늘창을 들고 힘차게 앞으로 전진한다. 

그의 노란색은 승리의 상징이며, 네덜란드 가톨릭을 표상한다. 렘브란트는 창에 묶인 황금색 술을 자유롭고 거칠게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이는 가까이 있는 것은 꼼꼼하게, 멀리 있는 것은 거칠게 표현해야 하는 규칙을 다시 깨트린 필치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의 결과물이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오합지졸 같이 규율이 없는 군대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그림 속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민병대의 자율적인 모습’이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부가 몰리는 위대한 도시 암스테르담에 대한 렘브란트의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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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를 쓴 작은 렘브란트가 두 남자 사이에서 빼곡히 올려보고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전쟁을 치르던 80년 전쟁 기간(1566~1648)에 도시 방어를 위한 민병대가 생겨났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민병대 초상화를 그릴 무렵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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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부분.

화면을 밝히는 내부 광원으로 이 소녀는 노란색 의상의 로이텐부르크 중위와 함께 가장 밝게 빛난다. 민병대 단체 초상화에 엉뚱하게 허리춤에 흰 닭을 거꾸로 매달고 금빛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나타났다. 

닭의 발톱은 민병대인 클로베니에르(Kloveniers) 또는 화승총 사수(Arquebusiers)를 나타낸다. 그들은 푸른색 배경에 황금 발톱이 상징이었다.

다른 해석으로는 이때 아내인 사스키아가 몹시 아파서 사스키아를 닮은 이 소녀를 그려 넣으며 회복을 기원했다고 보기도 한다. 죽어가는 아내 사스키아를 위해 화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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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부분.

이 남자는 화승총에 화약을 장전하고 있다. 시끌벅적함 속에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평범한 이들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듬직한 이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하라고 빨간 깃털 모자와 빨간 옷을 입혔다. 렘브란트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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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북 그리고 개.
 
렘브란트는 창들이 가로세로 화폭을 분할하며 역동성을 가미했다.

공식적인 유니폼을 입지 않은 사람들도 각각 반짝이는 갑옷과 헬멧으로 무장했다. 북을 치는 고수 앞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아이들과 개까지 그야말로 난장이다. 그러나 모두들 퍼레이드를 준비하느라 기분이 들떠서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과 열기가 화폭 밖으로 흘러 넘친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7명의 다른 화가들의 집단초상화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이전 집단초상화의 타성을 거부하고 역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미술사학자인 샤이먼 샤마는 이렇게 평가했다.

“모든 인물은 존재의 무게를 지키면서도 한 편의 역동적인 드라마에 종속되어 있는 듯하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