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라여고 추리반 친구들에게 [닭새라 매거진③]

기사승인 2021-03-13 08: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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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여고 추리반 친구들에게 [닭새라 매거진③]
티빙 오리지널 ‘여고 추리반’ 화면

※ 티빙 오리지널 ‘여고 추리반’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안녕, 새라여고 추리반 친구들아. 나는 너희와 같이 새라여고에 다니는 학생이야. 추리반 사건의뢰함에 이런 편지가 있어서 놀랐지? 하지만 너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익명으로 편지를 남겨. 새로운 사건을 의뢰하는 건 아니니 안심해도 좋아. 너희도 이 학교에 전학온 지 꽤 됐으니 내가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걸 이해해줄 수 있겠지. 편지를 쓰는 지금도 누군가 볼까 봐 두근거린다.

사실 나는 너희 다섯 명이 처음 학교에 올 때부터 너희를 지켜보고 있었어. 스쿨버스를 타고 교정을 걸어 들어 오던 너희의 모습이 생생하다. 조용한 우리 학교에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등교하던 건 너희가 처음이었어. 교실 창문으로 너희를 보고 깜짝 놀랐지. 한 명도 드문 전학생이 다섯 명이라니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때까지는 너희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이 먼곳까지 온 애들인 줄 알았어. 

내 생각이 깨진 건 너희가 온 첫날이었어. 너희가 교무실에서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학교 애들이 조용히 공부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알 건 다 알고 있어. 사라진 피자 두 조각의 행방을 추리만으로 알아냈다는 얘기를 들었어. 민정음 선생님도 까먹은 선생님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너희가 찾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 어떤 아이들일지 궁금했어. 너희가 반에 들어와 첫인사를 하고 도연이가 “박수 세 번 짝짝짝”을 외칠 때 나도 환영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는데, 워낙 조용한 분위기라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어. 섭섭했다면 미안해. 

범상치 않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추리반’에 들고 싶다고 해서 정말 놀랐어. 우리학교에서 추리반과 교지편집부는 금기어였거든. (이건 내 생각인데 학교가 사실을 전하거나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너희가 추리반에 가입하는 걸 금방 포기할 줄 알았어. 그런데 너희는 굳게 닫혔던 옥상 추리반 동아리실의 문을 열고 끝내 추리반이 됐어. 

S반 선발시험이 있던 날을 기억하니? 너희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됐지. 새라여고 학생들은 모두 마찬가지일 거야. 전교 1등을 도맡아하던 고인혜가 나애리와 컨닝을 하다니. 시험 결과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지. 더욱 놀라운 건 그 사실을 너희가 밝혀냈다는 거야. 선생님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컨닝을 너희가 추리해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어.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인데, 그때 처음 너희가 정말 멋있어 보였어.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지. 

그리고 나서 벌어진 일들…. 인혜 사물함에 붙일 포스트잇을 쓰면서 조금 울었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생각도 해봤고 말이야. 이것도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비밀인데, 내가 새라여고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는 추리반이 있기 때문이었어. 입학하고 몰래 옥상 동아리실까지 간 적이 있어. 나도 그 입단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혼자선 안 되더라. 그래서 포기하고 가만히 학교에 다녔지. 나는 왜 똑똑하지도 않고 용기도 없을까 자책하기도 했어.

그런데 너희를 보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은 친구와 함께하면 되는 거였어. 풀기 힘든 문제를 마주하면 혼자서 끙끙거리다가 접어뒀는데, 이제는 아니야. 나도 내 곁에 친구들과 함께할 거야. 먼저 손 내밀고 친구들의 손을 잡을 거야. 함께 문제를 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있겠지. 언제나 힘을 모아 사건을 해결하는 너희처럼 말이야. 

요즘 학교에 찝찝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 몸조심해. 오늘은 이름을 밝히지 못했지만, 언젠가 매점에서 웃으면서 인사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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