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영유아검진’ 거부하는 의사들

정부도 사실 인지…“검진기관 안내, 공식 조치는 안해” 

기사승인 2021-12-22 06: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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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접종, 낮은 검진수가 맞물려 

소청과醫 “10년간 수가 인상 단 한 번…폐업 왜 하겠나” 

돈 안 되는 ‘영유아검진’ 거부하는 의사들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동부지부에서 한 어린이가 독감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박효상 기자


“원주에서 횡성, 춘천까지 갔는데 영유아검진을 못 받았어요. 지역 맘카페 등을 보니까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청과) 의원들이 단합을 하고 있다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지역도 같은 상황인가 봐요?”

올해 4월생 딸아이를 둔 A씨는 쿠키뉴스에 이같이 말했다. 강원도 원주시에 살고 있는 A씨는 지난 10월 1차 영유아검진을 받기 위해 도내 지역들을 전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군데 넘게 알아봤는데 1차 검진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 모든 의원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물어보니 강원도 지역 소재 의원 한 곳을 알려줬다. 미리 전화를 안 하고 갔더니 처음에는 진료접수를 해줬다. 그런데 1차 검진이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 진료거부라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B씨도 아이의 영유아검진을 위해 타 지역구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특히 B씨의 아이는 소청과가 아닌 일반내과의원에서 검진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예약이 안 됐다고 한다. 그는 “유치원 입소를 위해서는 영유아검진이 필수다. 그런데 지역 내 소청과들은 코로나19 백신접종으로 바쁘다고 영유아검진을 거절했다. 건보공단에 문의해보니 옆 동네에 있는 일반 내과 번호를 알려주더라. 타 지역이긴 했지만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선착순으로 가야 해서 1시간 반 동안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그날 일정이 가능해서 일이 끝난 늦은 오후에 가까스로 받을 수 있었다. 일반 워킹맘들은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가뜩이나 소청과가 많이 없어서져 갈 곳이 없는데 백신 접종으로 인한 수익이 더 크고, 성인들까지 소청과에서 백신을 맞으니 검진을 안 하는 것 같다”고 제기했다. 

정당한 사유 없으면 ‘진료거부’ 소지…“일단 모니터링 중”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들 말고도 거주 지역 내 소청과에서 영유아검진을 받지 못했다는 민원들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특별한 사유 없이 검진을 안 받는다고 하거나,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이 꽉 차 있어 할 수 없다는 이유들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문을 닫는 소청과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어 아이를 둔 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백신접종으로 인한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일부러 진료거부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영유아검진 관련 민원 처리를 받는 건보공단 관계자는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가가 불만족스러워서 전체적으로 (검진을) 안 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다”며 “실제로 영유아검진보다는 백신 수가가 좀 더 나와서 그런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건보공단에 민원을 넣는다고 해도 어느 병원이 현재 검진을 하고, 안 하는지 알진 못한다. 이전에 영유아검진 수가를 청구한 기관들을 위주로 전화번호 등만 안내하고 있는 것”이라며 “소청과가 아니더라도 건강검진기관으로 등록돼 있으면 검진은 가능하다. 일반 내과도 가능”이라고 부연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비용은 감염병예방법 시행령에 따라 1회당 1만9220원으로 정해져 있다. 

반면 영유아검진은 투입되는 시간과 난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수가가 낮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발달평가 및 건강교육비용은 2007년 제도 도입 당시 수가가 유지되다가 2017년 한 차례 인상을 통해 각각 6600원에서 7920원, 9000원에서 1만800원으로 인상됐다. 

정부는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특별한 사유 없이 진료를 하지 않을 경우 ‘진료거부’에 해당될 소지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현행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검진을 하지 않는 이유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검찰 조사 등을 통해 구체적 상황을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검진 거부 사례 등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모니터링 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조치하진 않았다. 이전보다는 참여기관이 늘고 있고, 건보공단을 통해서 참여기관을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독 소청과가 적은 지역에서 어려움이 나타나는 것 같다”라며 “소청과가 아니더라도 검진을 하는 곳에서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비급여‧수가인상 없이 강제노동, 의사도 힘들다”

소청과 의사들은 정부가 모든 잘못과 책임을 의사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소청과 폐업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낮은 수준의 수가를 유지해 오히려 아이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월급이 10년 동안 100만원이라고 생각해봐라. 어떤 사람이 계속 하겠느냐. 그런 직종이 어디 있느냐”라면서 “영유아검진 수가는 지난 10년간 단 한번 인상됐다. 그것도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다 그만 두겠다 라고 하니 한 번 올려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소청과는 비급여 진료도 없다. 정부가 고용주다. 그런데 100만원씩만 주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어떻게 유지를 하느냐”라며 “의사가 직원들 월급보다 못 가져가고 월세도 못 내니 소청과가 수도 없이 망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의사회 차원에서 연초부터 제대로 해보자고 했는데 복지부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다. 쓸데없는 곳에는 돈을 펑펑 쓰면서, 이게 소청과 의사들만 잘못이겠냐”며 “이건 저출산 대책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영유아검진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진료 받을 소청과가 없어지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대부분 병원들은 소청과 전공의(레지던트)도 못 뽑았다. 아이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됐다”고 비판했다.
 
다만 임 회장은 “의사회 차원에서 검진을 하지 말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보상수준이 형편없으니 검진을 포기하게 됐을 것”이라며 “백신 때문에 검진을 안 하겠다는 얘기는 그만큼 수가를 주면 검진을 하겠다는 얘기가 될 수 있겠다”고 전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청과가 비난 받아야 한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소청과는 영아검진이라도 수가를 제대로 달라는 얘기”라며 “정부는 그거도 아깝다고 한다. 한 달 전에 복지부 측에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는데 담당 과장도, 국장도 아닌 사무관이 나왔다. 의지가 없다는 거다. 또 성인검진과의 형평성 얘기를 하는데 성인과 애들 검진은 차원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복지부 관계자는 수가 인상과 관련해 소청과의사회측과 논의를 하고 있냐는 질문에 “소청과에서 건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정부가 구체적으로 말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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