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입력 2022-06-10 23: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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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박용준 원장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는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되었던 드라마이다. 농촌의 풍경과 삶의 애환을 담아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던 그 드라마는 852회의 방송 동안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도시에서의 치열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꾸며 다시 보기를 많이 한다고도 알려진 드라마인데, 많은 나무 중에서 그 제목을 대추나무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추는 열매가 올망졸망 한가득 열리기 때문에, 예로부터 자손 번식을 뜻하는 과실로 여겨져 왔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신랑, 신부 양가 집안의 어른들이 새신부의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는 풍습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제사상을 차릴 때에도 대추는 과일 중에서 첫 번째로 놓여지는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렇게 대추는 우리에게 참 친근한 나무이다. 하지만 대추나무의 꽃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싶다. 

왜냐 하면 봄에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의 화사한 꽃을 피우는 벚꽃, 개나리, 이팝나무, 조팝나무, 아카시나무 등 아름다운 꽃을 만개하는 나무들과 다르게 대추나무는 이런 꽃들이 사라져갈 무렵, 아주 작은 연황색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대추나무의 작디 작은 꽃이 옹기종기 가지 옆에서 피기 시작하는데 그 크기는 꿀을 찾아 날아드는 벌의 크기와 비교해보면 왜 우리가 그 꽃을 잘 모르고 살아왔는지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대추나무 꽃에는 꿀이 많이 담겨있어 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대추열매를 ‘나무에서 나는 꿀’이라 하여 목밀(木蜜)이라 부르는 이유도 꿀이 많기 때문인데 열매가 맺기 이전의 이 작은 꽃들에도 이미 꿀이 많이 들어있다. 봄에 온 세상을 하얗게 피어나던 아카시나무 꽃 등이 지고 나면 그 때 서야 피기 시작하는 중요한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늦봄에 많은 꽃들이 피다가 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6월이 오면 그 때서야 피기 시작하는 대추꽃은 향기도 달콤하고 은은하여 편안한 정감을 전해준다. 예전에는 이때가 한창 모내기를 하는 시기여서, 모내기철을 알리는 계절적 지표식물로도 알려져 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왼쪽부터 대추나무 꽃, 벌과 대추나무 꽃, 대추.

대추를 한의학에서는 대조(大棗)라고 하는데,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비장을 따뜻하게 보하여 기를 올리어, 심장을 편안하게 하여 정신을 안정시키며, 모든 약재들의 조화를 이룬다.

大棗甘溫, 補脾益氣, 寧心安神, 調和藥性. 

한의학에서는 ‘단맛은 몸을 보하고 따뜻한 기운도 몸을 보한다’ 하였다. 특히 ‘따뜻한 성질은 나쁜 기운을 흐트러트리고 좋은 기운이 통하게 한다’ 하였으니 달고 따뜻한 성질의 대추는 몸을 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대추는 잠을 잘 오게 하는 과일로도 알려져 있는데, 대추에 풍부히 함유된 칼슘은 뼈의 건강을 지켜줄 뿐 아니라, 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생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대추차를 끓일 때 간혹 하얀 거품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해로운 이물질이 아니라, 대추 속 사포닌 성분이 거품을 만드는 성질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그냥 마셔도 괜찮다. 대추에 함유된 사포닌은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저녁에 대추차 한 잔을 마시면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추는 비타민C를 귤이나 사과보다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비타민C의 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비타민C의 체내 흡수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 비타민P인데 대추에는 이 또한 많이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P는 폴리페놀의 일종인 플라보노이드로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P는 비타민 C를 도와서,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멜라닌 색소생성을 억제하여, 잡티나 기미가 생기는 것을 막아서 피부의 미백 효과를 높인다. 그래서 ‘대추를 매일 먹으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이다. 또한 비타민P는 모세혈관의 탄력성을 증진하여 혈관의 투과성을 높인다. 이런 작용을 통해 코피나 잇몸 출혈 등의 작은 질환 뿐 아니라, 뇌출혈을 예방하는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그래서 ‘하루에 대추를 세 알씩 먹으면 평생 늙지 않는다(一日吃三棗,終生不顯老)’라는 속담도 전해진다. 

나무 자체로서도 대추나무의 용도는 다양하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벼락 벽(霹), 대추 조(棗), 나무 목(木), 즉 벽조목이라 한다. 벽조목은 ‘양기가 강하여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하여 중요한 계약시 필수적인 도장을 만드는 재료로 지금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대추나무의 아름다우면서도 치밀한 나무결은 가구로도 인기가 높다. 

이렇게 우리에게 유익한 대추나무는 강인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바람이 불어도 꽃이 지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하니 대추나무꽃이 풍성한 만큼 열매를 맺는 수확도 많을 것이기에 다산의 상징인 것이다. 또한 단단한 한 알의 대추씨처럼 꿋꿋이 세상을 대하라는 의연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처리가 빠르고 야무진 사람을 ‘대추나무 방망이’같다고 표현할 만큼 대추나무는 그 강인함과 의연함을 나타낸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연황색과 작은 크기 때문에 눈에 잘 띠진 않지만, 많은 대추열매를 맺기 위해 조용히 꽃을 피워내는 대추의 강인함과 의연함을 마음 속에 새겨보며 감상하면 좋은 시기인 듯싶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