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레고랜드 발 채권 비상...왜 경제에 타격일까 [알기 쉬운 경제]

기사승인 2022-11-05 06: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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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레고랜드 발 채권 비상...왜 경제에 타격일까 [알기 쉬운 경제]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성장 가능성을 반영하는 시장에서 불안은 가치를 깎습니다. 신뢰에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시장에 있는 자금이 한 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최근 신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으로 채권시장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인데요. 제2의 IMF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강원도에 있는 테마파크가 제2의 IMF를 불러왔다니. 무슨 관계인 걸까요?

레고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합니다. 기업 한 곳에서 레고랜드를 만들려면 부담이 크기 때문에 직접 채권을 발행해 기관이나 투자자에게 돈을 빌렸죠. 채권은 돈을 빌려 쓸 때 발행해 주는 일종의 차용 증서입니다. 일정 기간 빌려 쓰고 만기가 도래하면 원금과 함께 이자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사업 주체인 강원도는 레고랜드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12년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라는 부동산 개발·시행·분양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GJC가 레고랜드 프로젝트의 개발 주체이고 강원도는 GJC의 지분 44%를 보유하고 있죠. 

GJC는 늘어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세웠습니다. SPC는 레고랜드처럼 특정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자산을 매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우는 법인을 말합니다.

GJC는 아이원제일차에 ‘돈을 갚을 의무(대출 채권)’를 담보로 2050억원을 빌렸고 아이원제일차는 이 대출 채권을 담보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다수의 증권사에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투자자들의 지적에 강원도가 ABCP에 지급 보증을 섰죠. 만약 GJC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강원도가 대출 만기일에 대출금 상환에 필요한 지급금을 아이원제일차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지난 9월 29일 이 대출 채권의 만기일이 도래했습니다. 아이원제일차가 상환해야 하는 돈은 2050억원이죠. 그러나 강원도는 법원에 GJC를 기업 회생 절차에 넣어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돈을 안 주겠다는 얘기죠.

강원도가 빌려준 돈을 못 준다는 것은 ‘정부가 지급 보증한 채권이 부도’가 났다는 말입니다. 채권 시장의 근간인 ‘신뢰’에 금이 간 것이죠.

정부도 돈을 갚지 않는데, 투자자들이 시공사나 증권사에 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요? 국가신용등급에 따르는 지자체가 보증한 어음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반 건설 사업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에 금리를 높여 채권을 발행해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됐죠.

불은 회사채 시장과 국고채 시장으로 번졌습니다. 투자자들의 손절 매도로 이어지자 ‘돈맥경화(돈이 시중에 돌지 않는 상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흥국생명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흥국생명이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채권 조기 상환을 연기하면서 해외 채권 시장마저 국내 기업들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흥국생명보험은 지난 2017년 투자자들에게 5억 달러를 빌렸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이라는 채권으로 이자율은 연 4.475%이고 만기는 30년입니다.

이 채권에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5년이 지나면 돈을 일찍 갚을 권리(콜옵션)가 흥국생명에 생깁니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11월 9일 돌아오는 콜옵션 행사기일에 이를 행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물(KP)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죠. 자본확충과 자금 조달을 위해 해외 채권 발행을 추진하던 대형 은행들에도 비상이 걸린 겁니다. 

정부는 회사채와 단기자금시장의 돈맥경화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은행의 셈법은 복잡합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장에 있는 돈을 거둬들이고 있었는데, 다시 돈을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죠.

특히 한국은행이 올해 한 번 더 ‘빅스텝’(기준금리 0.50%p 인상)을 앞두고 있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억제책이 최근 정부의 유동성 지원책과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와 금융업계가 대규모 유동성 지원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한은이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하면 물가를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마냥 돈을 풀 수도, 거둬드릴 수도 없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제2의 IMF까지 갈 것이냐를 두고 썰전을 벌이기보다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의견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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