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설날 파티에 가봤다 [쿠키 칼럼]

사상 첫 음력 설 기념 행사 열려
한국 와보니 이슬람 반대 잔치(?)
반대 하더라도 조롱 혐오는 말아야

기사승인 2023-02-25 0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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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설날 파티에 가봤다 [쿠키 칼럼]
백악관에서 사상 처음 열린 음력 설 기념 행사.


설날 행사가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열렸다. 지난 1월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는 한국 중국 베트남 출신 400여 명을 초대해 설 잔치를 벌였다. 질 바이든 여사는 붉은 색에 황금무늬가 그려진 중국풍 드레스를 입었다. 북청사자춤에 나오는 듯한 탈춤공연도 열렸다. 백악관에서 음력 설 행사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나도 시민단체 활동가 자격으로 현장에 초청 받았다. 대만계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케서린 타이, 중국계 피겨스케이팅 선수 네이선 첸을 비롯해 필리핀계 헐리우드 배우와 시민활동가 등 미국 사회 각계각층의 아시안계 인물이 모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의 문화와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고 추켜세웠다. 미국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어떠한 혐오범죄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백악관 설날 파티에 가봤다 [쿠키 칼럼]
중국인들이 설날에 추는 전통 탈춤 공연을 백악관에서 벌이고 있다.


백악관 행사 직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본 많은 뉴스 중에서 대구에서 벌어진 이슬람 사원 건립 이슈가 눈길을 끌었다. 반대하는 분들이 현장 근처에서 돼지 수육과 국밥을 먹는 행사를 열었는데, 이 전에도 돼지 머리를 전시하고 바베큐 파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 건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곳에서 열었고, 전국에서 후원금을 모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미국에서 소수민족계 시민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종이나 문화적 차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이슬람 사원을 반대하는 의견은 괜찮다. 나도 기독교인이다. 종교적인 이유이든, 이질감이나 편견이나 어떤 이유로든 낯선 종교의 사원이 집 근처에 만들어진다는데 반대할 수 있다.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논의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원건립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다른 문화권의 관습과 문화를 아무렇지 않게 희롱하는 모습은 잔인했다. 무슬림에게는 금지된 돼지고기로 파티를 열고 돼지 머리를 그 앞에 전시하는 행동은 반대를 넘어 상대에게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에 가깝다. 주먹으로 치고 막는 일은 없었다고 해도 폭력적인 행동이다. 상대에게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상대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 조차도 할 수 없고 최소한의 존중도 보내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을 향해 눈을 찢는 행위를 보면 우리는 분개한다. 그들의 인종적 편견과 무지함에 기함한다. 이 돼지고기 사건은 어떤가. 편견과 조롱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아 보인다.

미국에도 다양한 편견과 차별이 있다. 사실은 코로나19 이후 아시안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그래도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상원 법사위원회에서는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를 주제로 청문회가 열렸다. 법사위 간사인 척 그래슬리 의원은 나와 내가 일하는 단체의 한국계 직원들을 청문회에 초청했다. 그래슬리 의원의 지역구인 아이오와주는 백인이 90% 정도 되는데도 인종차별적인 혐오범죄를 막는데 진심이었다.

지난 2021년 미국 의회는 아시안 혐오범죄 방지법을 만들었다. 백인 중에 백인인 바이든 대통령이나 그래슬리 의원이 앞장서서 아시안 혐오범죄를 막으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기에 백악관의 설잔치 같은 행사를 통해 혐오범죄와 차별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를 넓히려 애쓰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은 악(惡)이라기보다 낯선 존재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능으로 이해하는 편이 맞다.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꾸준한 교육과 노력으로 편견과 차별의 최대한 줄여야 한다. 최소한 차별과 혐오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공감대는 가지게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백악관 행사처럼 다양성과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을 정치 지도자들부터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백악관 설날 파티에 가봤다 [쿠키 칼럼]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