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후 현지 사업, "나는 너희와 다르다" 자세 후회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23)
사업 10여 년 만에 市 시설개선 지원금 받고 보니

기사승인 2023-03-13 08: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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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남원시 농업기술센터로부터 ‘농업인 가공사업장 시설개선 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부담 없이 5천만 원을 통째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2년 전에도 같은 사업에 신청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현장 실사도 없이 탈락했다.

이번에는 현장실사도 나오고 해서 약간의 기대는 했었지만, 막상 선정 통보를 받고 보니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싶다.
귀농 후 현지 사업,
남원시 농업기술센터 전경과 사업선정 통보내용이다. 시로부터 이런 보조금을 받기까지 참 먼 길을 에둘러 왔다. 사진=임송 제공

농촌사회에서 자부담 없는 5천만 원 정도의 사업이면 대략 중급 규모의 지원사업에 해당한다. 물론 수십억씩 지원해주는 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사업들은 매출이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우리처럼 소규모 사업장에는 해당이 없다. 소규모 사업자 대상 지원사업 중에 중급 규모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귀농 후 현지 사업,
남원시청 청사. 작년에 시장이 바뀐 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임 공무원 출신 시장이 내리 3선을 했었다. 사진=임송 제

나는 그동안 가능하면 정부 지원 없이 자력으로 사업을 운영하려고 노력해왔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면 자꾸 정부 쪽만 기웃거리게 되고 오히려 사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또한 정부에 근무할 때 정부 지원금 받으려고 굽실거리며 관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도 있다.

아무튼 이번 남원시로부터의 지원은 우리 회사로서는 매우 절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더없이 고맙다. 앞으로 관변에 포진하고 있는 사냥꾼들을 피해서 최대한 알뜰하게 집행할 생각이다. 몇 년 전에도 정부로부터 ‘수출 바우처’로 3천만 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바우처 사냥꾼에게 먹혀 허망하게 쓴 기억이 있기에 하는 소리다.

‘수출 바우처’는 정부에 바우처 수행기관으로 등록된 사업자를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수행기관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대부분 일반 시중가의 3~5배에 이를 정도로 터무니없다는 것. 나도 어쩔 수 없이 시중가의 3배 이상을 주고 용역을 맡기면서 마치 학창 시절 학교 앞에서 불량배에게 삥 뜯기는 기분이었다.

‘수출 바우처’ 제도 운영기관은 수행기관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합리적인지, 혹은 그들 간에 담합은 없는지 살펴봐 줬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회사 정도의 사업 기간(10년)이면 그동안 지자체(전북도나 남원시)로부터 중급 규모의 지원사업 정도는 이미 한두 차례 받았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유가 내가 외지인이라거나 혹은 지역 사업자들과 공무원 간의 모종의 관계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 심사 과정 중에 그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역 사회는 서울 등 대도시처럼 크지 않아서 사업을 몇 년 하다 보면 사업하는 사람에 대한 평판이 동종 업계나 지자체 공무원들 사이에 금방 퍼진다. 평판이 좋은 경우에는 관계자들과의 협력이 원활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고립되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외지인인 나에게 이 지역에 계신 분들이 친하게 지내자며 손을 내밀었던 것이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사실 그 정도면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 후하게 대접한 셈이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왜 외톨이로 지냈을까.

내 마음속에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라는 덜떨어진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돈이나 벌려고 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나랏돈이나 빼먹으려고 몰려다니는 짓 따위는 안 해.” “흥~ 자기 동네에서만 큰소리치고 밖에 나가면 찍소리도 못할 방안 퉁소들.”

막상 글로 옮겨놓고 보니 나 자신도 당혹스러울 만큼 방자하기 짝이 없는 생각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들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러고 보니 가끔 모임에 나가면 노골적으로 나에게 싫은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내 안에 이런 방자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데 상대방인들 나를 좋아할 리 있겠나. 내 안의 쓰레기는 외면하고 싫은 표정 짓던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남들과 다른가? 돈이 아니면 뭐를 위해 사업을 하나? 나도 돈 벌려고 사업하는 거 맞다.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정부 지원금 준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 그런 모임이 있을까 싶지만) 그 모임에 가지 않을 텐가? 만사 제쳐놓고 당장 달려갈 것이다.

또한 나도 당연히 익숙한 곳에 있으면 편하고 낯선 곳에 가면 긴장되고 불편하다.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를 좀 알아봐 달라는 일종의 ‘관종’(남들로부터 관심 받고 싶은 욕구)이 아니었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지역 사회로부터 선물(지원사업 선정)을 받고 보니 그동안 얼어붙었던 마음 한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마침 봄도 오고했으니 앞으로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야겠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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