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 방문
어른들과 외국인 관광객 방문 많아
"아이들과 함께 사라질 줄 알았는데"

기사승인 2023-05-04 06: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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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예전엔 부모님 손잡고 온 아이들이 가득했는데 이젠 달라졌어요. 둘러보면 알 수 있듯 아이들 비중은 줄고 옛날 장난감을 찾는 성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졌어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 1960년대 동대문역 앞에서 출발해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국내 최대 문구·완구 전문 시장이다. 3일 쿠키뉴스가 완구거리를 방문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시중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어린이날이나 연휴 전 사람이 붐볐던 완구거리는 최근 저출산에 다양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예전의 아성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상인 박모씨는 “주요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님들이 많이 없어졌다. 지금은 코로나가 좀 풀려서 나아졌지만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정말 이러다가 사업을 접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구매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눈앞에서 직접 장난감을 봐야 하는데 아이들도 줄고 그나마 있는 부모들도 요새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으로 저마다 가격비교를 하니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인형·장난감 관련 제조업체의 생산액은 2003년 3705억원에서 2019년 2806억원으로 감소했다. 사업체 수도 이 기간 219개에서 69개로 줄었다.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율 저하다. 1985년 66만명이던 신생아 수는 2020년 27만명으로 70%가량 감소했다.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하지만 완구거리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이 사라진 거리에는 추억을 찾는 성인들과 호기심에 방문해본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다. 실제 이날 방문한 창신동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보였다. 가게마다 20~30대 남녀가 ‘추억’이란 단어를 연발하며 감탄사를 보였다. 

가격도 비싸지 않은지라 구매로도 곧 잘 이어졌다. 기자가 보기에도 2000년대 초반에서 2010년대에 나온 포켓몬스터, 헬로키티 등의 제품은 그 시절의 감성을 마구 불러일으켰다.

20대 한 커플은 “며칠 뒤에 저희 한 친구가 생일인데 온 김에 재미로 옛날 장난감을 주려고 한다”면서 “확실히 요즘 나오는 장난감보다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정감가고 추억을 불러일으켜서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보면 이런 옛날 장난감들을 수집하는 친구들도 있다”며 “관심이 있다면 수집하는 행위가 즐거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1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상인 김모씨는 “옛날에는 부모 손을 잡고 오는 어린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부터 성인들까지 그 범위가 다양해졌다”며 “최근에는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니까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바로 옆에 동묘 구제시장에 온 김에 이곳까지 둘러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레고와 같은 성인 장난감도 많아지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장난감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와닿는다”며 “예전보다 아이들이 많이 사라진 건 분명하지만 보다 경제력을 갖춘 성인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덕분에 이 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김모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독일인 관광객 두 명이 앞을 지나간다. 양손에 든 봉투에는 장난감이 한 가득이다. 고양이 등 캐릭터가 그려진 손선풍기 등을 구매한 걸로 봐서 선물을 받아들 아이의 연령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시선을 조금 돌리자 또 다른 외국인 관광객 무리가 매대에 놓여있는 장난감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구경한다. 이미 양손엔 장난감이 한 가득이다. 구매한 제품들이 영화 피규어인 것으로 봐서 본인들 위한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자녀는 없어도 조카를 위한 선물에 진심인 방문객들도 여럿 있었다. 저출산 현상 속에서도 태어난 한 아이를 위해 부모, 친척, 지인이 모두 지갑을 열고 있었다. 이날 조카를 위해 여러 선물을 구매하고 있어 보이는 한 방문객은 가게 사장님에게 포켓몬스터 카드를 들어 보이며 “이거 좋은 것들이 좀 나와요?”라며 다양한 종류의 카드를 뒤적이며 고르고 있었다. 이미 선물을 한 보따리 구매한 또 다른 방문객은 같이 온 지인에게 “물총도 몇 개 살까?”라며 사장님에게 가격을 물어봤다.

상인 박모씨는 "아이들이 점차 사라지니까 장난감 시장도 같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며 "어른들도 어릴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비롯해 이같은 시장에도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완구거리도 그런 그들에게 또 맞춰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이색 데이트 코스로 변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저출산 시대'…어른·외국인이 대신 채운 장난감 거리 [가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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