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 전한 ‘악귀’ 비화 그리고 ‘시그널’·‘킹덤’

기사승인 2023-08-08 10: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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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작가 전한 ‘악귀’ 비화 그리고 ‘시그널’·‘킹덤’
김은희 작가. 넷플릭스

청춘을 위로하기 위해 쓴 이야기. 김은희 작가는 최근 집필한 SBS ‘악귀’를 이렇게 소개했다. 드라마는 악귀에 씐 공무원 준비생 산영(김태리)을 주인공 삼아 가정폭력부터 보이스피싱 범죄와 청춘이 직면한 막다른 현실을 그린다. 산영이 살아가는 삶은 녹록지 않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쪼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기보다 형편이 나은 친구를 보며 시무룩해한다. 때로는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다들 나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고달픈 그의 일상을 바꾼 건 악귀다. 악귀는 산영의 마음속 욕망을 끄집어내 실현한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김은희 작가는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에게서 희망을 뺏어간 범죄자들을 귀신에 빗대어 그리려 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신문에 실린 9급 공무원 기사에서 ‘악귀’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청춘들이 그토록 바라던 9급 공무원이 됐어도 초봉이 턱없이 낮은 걸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김 작가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린 이들이 손에 쥐어진 돈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면서 “청춘에게 돈을 벌어줄 수 있는 귀신이 씐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악귀’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작가 전한 ‘악귀’ 비화 그리고 ‘시그널’·‘킹덤’
‘악귀’에서 구산영 역과 악귀를 동시에 연기한 김태리. SBS ‘악귀’

‘악귀’가 그리는 청춘은 시대를 막론한다. 195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청춘 이야기와 이들을 좀먹던 그릇된 욕망, 사회악을 다룬다. 김은희 작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주특기인 오컬트 장르에 녹였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지론 덕에 가능했다. 끔찍한 범죄를 볼 때마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단다. 작가의 이상을 실현시킨 건 ‘악귀’를 함께한 배우들이다. 산영과 악귀를 동시에 연기해야 했던 김태리를 비롯해 오정세, 홍경, 김원해, 김해숙과 특별 출연한 진선규까지 여러 배우가 ‘악귀’ 세계를 만들어갔다. “귀신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더 소름이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지상파에서 선뵈기엔 쉽지 않은 소재다. 주 시청층이 대중인 만큼 마니아층을 겨냥한 오컬트 장르는 금기와도 같았다. 상황을 반전시킨 건 김은희 작가라는 이름값이다. ‘악귀’는 방영 내내 10%대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했다. 타 프로그램 대비 2049 시청층의 호응 역시 컸다. 김 작가는 “기획 단계부터 오컬트 장르와 악귀 소재가 지상파에서 괜찮을지 계속 생각했다”면서 “고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응원하고 부족한 부분을 격려해 감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가 주목한 건 사람이다. 작가는 “귀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려 했다”면서 “귀신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지 않나. 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를 심어주려 했다”고 귀띔했다. 

‘악귀’를 마친 지금, 김 작가는 신작 구상에 여념 없다. tvN ‘시그널’과 넷플릭스 ‘킹덤’ 등 기존 시리즈의 후속 편을 기다리는 목소리도 많다. 김 작가는 “여러 제작적인 난제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모두 애정이 깊은 작품들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도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