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노동 지키려면…“갱신기대권 법제화 필요”

기사승인 2023-08-28 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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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노동 지키려면…“갱신기대권 법제화 필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 주최로 ‘기간제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갱신기대권 법제화 방향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유채리 기자

#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정상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지회지회장은 재계약을 할 때, 노동자가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기간제 노동자는 마음껏 해고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고용 안정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나 늘어나는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해줄 갱신기대권 법제화는 30여년 가까이 제자리다.

2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주최한 ‘기간제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갱신기대권 법제화 방향에 대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갱신기대권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 불안정성과 여기서 빚어지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갑을 관계 때문이다.

갱신기대권이란 근로 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될 거라고 기대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기간제 노동자는 2019년 380만명에서 지난해 469만명으로 증가한 반면, 고용불안은 여전해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강주리 법학박사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불안정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인격적으로 종속되게 만든다”며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나아가 인간다운 노동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서로가 대등한 위치에서 근로관계 유지 기간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갱신기대권이 법으로 정해져있지 않고 판례로만 인정된다는 점이 고용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는 “법이 정한 권리가 아닌 법원에 의해 (판결로) 형성된 권리”라며 “기대권을 법적 권리로 인정하기에는 논증이 부실해, 적용 범위와 법적 효력이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으로 명문화되지 않아 갱신기대권 인정 여부가 판결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2월 쿠팡풀필먼트는 노동조합 활동을 한 기간제 근로자들의 재계약을 거부했다. 이를 두고 경기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노동자 A씨에게는 갱신기대권을 인정한 데 반해, 인천 지노위는 노동자 B씨에게는 갱신기대권을 부정했다. 같은 사안임에도 판단하는 주체에 따라 판결이 다르게 나면 판례로서 인정됐음에도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지노위가 아닌 법원에 소송을 청구해도 갱신기대권이 적극적으로 보장된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변성영 중앙노동위원회 차별시정 전문위원은 “법원은 잘게 나눠 반복·갱신되는 단기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데 보수적이고 엄격한 입장”이라며 “2년이라는 기간 동안 17회나 단기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한 사례에서도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간다운 노동 지키려면…“갱신기대권 법제화 필요”
‘기간제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갱신기대권 법제화 방향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한 박소영 공인노무사가 말하고 있다.   사진=유채리 기자

더 큰 문제는 갱신기대권이 법제화되지 않는다면 사용자와 기간제 노동자 간의 종속관계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2년의 기간 내에서는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합의에 기반해 근로계약기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할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강 박사는 “최초 근로계약 체결은 물론, 만료 후 다시 체결할 때도 근로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소영 노무사 역시 이에 공감하며 “(갱신기대권을) 판단하는 요소들이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법리 형성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짚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갱신기대권을 법에 명문화해 계약 연장을 위한 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사용자는 자유의사에 따라 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의 판단 근거 역시 일률적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기간제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에 근로 계약을 맺는 데 기간의 정함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돼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갱신기대권을 입법화할 때, 노동자의 갱신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거절할 때는 사유를 서면 등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당한 이유가 아닌 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계약당사자의 주관적인 의사보다는, 객관적 보호 필요성을 고려해 근로관계 존속여부가 결정될 수 있게 제도가 구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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