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화장지를 먹는거냐?" 화장지의 역습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21)
'응가' 소동, 시끌벅적 우당탕..."우선 학교부터 가고 보자 늦었어!"

기사승인 2023-09-18 08: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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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김양근 전성옥 부부가 아들 태호와 함께 했다. 사진=전성옥

“엄마! 엄마아~~!”

아침부터 애타게 엄마를 부르는 곳은 화장실. 어제 갈아놓은 휴지가 벌써 다 떨어진 모양이다.

“아니, 어제 갖다놓은 화장지 벌써 다 쓴 거야?”

“도대체 너희들은 화장지를 어떻게 하는 거냐? 먹는 거냐?”

엄마의 잔소리가 아침을 뒤 흔든다.

저마다 한마디씩 잔소리 핑퐁이 시작되었다.

“엄마, 저는 어제 이후로 화장실 한 번도 안 갔거든요.”

“나는 학교에서 똥 싸고 오거든.”

“저는 화장지 세 장씩 밖에 안써요. 진짜!”

화장지 세 장밖에 안 쓴다는 범인(?)은 안00이다.

“야, 화장지 세 장으로 어떻게 닦는다고 그러냐? 손에 다 묻어. 손도 잘 안 씻는 주제에.”

“아니 그러니까 오줌 쌀때는 세 장이면 된다는 거지. 내말은.”

냄새나는 아이들의 다툼 끝에 엄마의 결론이 떨어진다.

“그래도 화장지 세 장으로는 좀 어렵잖니? 엄마도 안될 것 같은데.”

“그래요?”

“엄마. 저 A4용지 두 개만 주세요.”
식구가 많다보니 화장실의 화장지 갈아대기도 바쁘다. 아이들이 '아껴쓰기' 포스터를 그려놨다. 사진=전성옥 제공

화장지 세 장이면 된다는 녀석의 결연한 말투.

도대체 바쁜 이 아침에 무슨 수작인지 모를 일이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양심도 없이 함부로 쓰고 버리던 딸이었는데 무슨 일인가?

색연필을 준비해 놓고 뭔가를 열심히 그리는 00의 달라진 모습이 사랑스러운 아침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짜잔! 엄마. 보세요. 다 그렸어요. 이걸 화장실 문에 붙여 놓을 거예요.”

웃음이 절로 난다. 화장실 문 앞뒤에 한 장씩 붙은 아껴쓰기 캠페인이다.

“엄마. 똥 쌀때는 다섯 장, 오줌 쌀때는 세 장이면 되요.”

화장실 문에 붙은 문구를 보던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쏘아붙인다.

“참나 어이가 없네. 야, 그럼 손에 묻는다고 했잖아?”

“너나 그렇게 해. 우리집에서 화장지 제일 많이 쓰는 주제에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런 문제는 가족회의를 해서 의견을 맞춰야지 니 맘대로 정하냐?”

아침이 온통 똥냄새로 시끄럽다. 세 장이냐, 다섯 장이냐, 나는 안 할거니까 너나 해라, 너 코풀 때 화장지 몇 장 쓰냐? 그것은 왜 말 안하고 그러냐…….

시끄러운 아이들 속에 애먼 화장지만 화장실에서 조용하다.

“얘들아, 우선 학교부터 가고 보자. 늦었어.”

기어이 화장실 문에 문구를 붙이고 난 아이는 당당하게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갔다. 막내아이 손에 닿지 못하게 문 위쪽에 붙여놓은 A4용지가 아침바람에 펄럭인다.

‘화장지 세 장이면 엄마도 곤란한데…….’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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