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2000명 8년의 기다림”…‘새 빛’ 바라는 각막 이식 대기자

기사승인 2023-12-01 06: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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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2000명 8년의 기다림”…‘새 빛’ 바라는 각막 이식 대기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은평성모병원

# 지난 2016년 70대 김자옥(가명)씨는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병원에서 각막 이식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이식을 받지 못했다. 80대가 될 때까지 어둠 속에서 생활하던 김씨는 2019년 7월 은평성모병원 사회사업팀과 하나금융나눔재단으로부터 수술비 전액을 지원받아 오른쪽 눈 각막 이식 수술을 통해 세상의 새 빛을 되찾게 됐다. 그 해 4월 은평성모병원이 안은행을 설립하고 각막이식팀을 꾸려 수술한 첫 번째 환자였다. 김씨는 “밝은 세상을 보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가족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게 기뻤다”고 말했다.

2128명. 2022년 기준 국내 각막 이식 대기자 수다. 한 해 2000명 이상이 8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시력을 언제 모두 다 잃을지 모를 공포와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각막 손상으로 인한 시력 저하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각막 이식이 유일하지만, 적은 기증량으로 각막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어둠에 갇힌 사람들이 밝은 빛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증에 많은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들이 쌓인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각막 이식은 영구적 혼탁이 발생한 각막을 건강한 각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이다. 전층의 각막을 이식하고 봉합하는 방법이 대표적인데 안과 수술 중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각막 혼탁의 위치에 따라 일부 층만 이식하는 부분층 수술도 많이 이뤄진다. 각막 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각막 이식 대기자로 등록돼 정해진 순번에 따라 각막을 기증받게 된다.

문제는 국내 기증 각막 이식을 받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단 것이다. 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장기이식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각막 이식 평균 대기기간은 8년이다. 국내 각막 기증을 통한 이식 수술은 뇌사 기증과 사후 기증을 모두 포함해 300건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거치며 2021년 370건보다 줄었다. 국내 기증이 아닌 해외에서 수입한 각막을 이용하면 대기 순서와 상관없이 이식받을 수 있지만, 고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는 국내 기증 각막에 기대는 현실이다.

이현수 은평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각막 이식 대기자 중 양안 실명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빠른 이식수술이 꼭 필요하거나, 감염이 심해 안구파열의 위험이 큰 경우 고비용에도 어쩔 수 없이 외국에서 기증된 각막을 수입해 이식을 시행하고 있다”며 “수입 각막은 공수부터 운송까지 고비용이 들기 때문에 환자의 부담이 크고, 코로나19 유행 기간엔 항공기 운항 횟수가 줄어 외국 기증 각막조차 수급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해 2000명 8년의 기다림”…‘새 빛’ 바라는 각막 이식 대기자
이현수 은평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장기 기증 문화가 활성화돼 국내 뇌사자 또는 사후 안구 기증이 늘어나 더 많은 이식 수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은평성모병원


이 교수에 따르면, 은평성모병원은 지난 2019년 7월 첫 이식을 시작으로 2021년 3월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을 설립해 지난달 15일 기준 총 101건의 각막 이식을 시행했다. 이식에 사용된 각막은 외국인이 기증한 수입 각막이 78건으로, 국내 기증 각막 23건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은 국내 최초의 장기이식병원으로 각막이식센터, 간이식센터, 소장·다장기이식센터, 신·췌장이식센터, 심장이식센터, 폐이식센터 등을 갖췄다.

이식 수술의 3분의 2가 수입 각막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이 교수는 국내에서도 외국처럼 장기 기증 문화가 활성화돼 이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환자들이 더 빨리 값싼 가격에 이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교수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동양권 국가들은 다른 장기는 기증하더라도 안구 기증은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장기 기증 문화가 활성화돼 국내 뇌사자 또는 사후 안구 기증이 늘어나 더 많은 이식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부의 장기 기증 활성화 정책도 강화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그는 “장기 이식은 가장 고귀한 생명 나눔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가치 있는 의지다”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장기 기증이 많이 위축됐다. 뇌사 장기 기증을 비롯해 어둠에 갇힌 환자에게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각막 기증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골수 유래 억제 세포를 각막 이식 안구에 주사하는 방법을 통해 거부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이식편의 생존율을 증가시킬 수 있단 최근 연구 결과를 들며 “각막 이식 수술 후 거부반응을 더욱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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