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높아진 시청자들, 어설픈 ‘애국 드라마’ 안 먹히네

기사승인 2024-01-10 11: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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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높아진 시청자들, 어설픈 ‘애국 드라마’ 안 먹히네
‘경성크리처’ 스틸. 넷플릭스

넷플릭스 ‘경성크리처’가 지난 5일 파트2를 공개하고도 반등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연말 먼저 공개된 파트1은 넷플릭스 비영어 TV시리즈 3위로 데뷔했지만 정작 한국 반응이 나빴다. 왓챠피디아 이용자가 이 작품에 매긴 평점은 평균 2.6점(5점 만점, 9일 기준). 제작비 700억원을 들인 대작으로는 아찔한 성적이다. 작품은 1945년 경성(서울)으로 시청자를 데려간다. 일본이 조선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벌여 괴수를 만들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흥행에서 쓴맛을 본 사례는 지난해 특히 많았다. 배우 김남길이 주연한 넷플릭스 ‘도적: 칼의 소리’도 그중 하나다. 작품은 ‘오징어게임’과 ‘수리남’이 히트해 ‘넷플릭스 대목’으로 불리는 추석 연휴에 공개됐으나 4주 만에 넷플릭스 톱10 순위에서 내려갔다. 영화는 불명예가 더 컸다. 동명 창작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관객 327만명을 모아 손익분기(350만명)를 넘기지 못했다.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등 역사적 사건을 담았다. 1930년대 항일단 소속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유령’(이해영)은 누적 관객 66만명을 기록하고 퇴장했다.

눈 높아진 시청자들, 어설픈 ‘애국 드라마’ 안 먹히네
영화 ‘암살’ 스틸. 쇼박스

2010년대만 하더라도 일제강점기는 ‘먹히는’ 소재였다. 익숙한 역사를 실사로 펼쳐내 보는 이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했다. 일본군 사령관을 겨냥한 독립군의 암살 작전(영화 ‘암살’)이나 폭탄 반입을 계획하는 의열단과 밀정의 심리전(영화 ‘밀정’)에 관객들은 가슴을 졸였다. 독립군 무장항쟁을 다룬 영화 ‘봉오동전투’(감독 원신연)와 시인 윤동주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송몽규(박정민)를 조명한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도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었다. TV에선 배우 주원이 주인공으로 나온 KBS2 ‘각시탈’이 최고시청률 22.9%를 기록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 직전 조선을 그린 tvN ‘미스터 션샤인’은 케이블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18% 넘는 시청률을 달성했다.

‘애국 드라마’가 이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새로운 재미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란 진단이 나온다. 독립 투쟁을 보여줘 애국심을 고취하는 전략이 젊은 시청자에 어필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젊은 세대는 일제강점기 등 역사물을 콘텐츠의 소재로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일제강점기는 이미 익숙한 소재”라며 “애국, 정의 같은 키워드만으론 시청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시대 배경 안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메시지를 주지 않으면 지루하게 느낀다”고 짚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 다른 장르와 접합을 시도하는 배경도 새로움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경성크리처’는 괴수물을 따왔고, ‘도적: 칼의 소리’와 ‘유령’은 각각 미국 서부영화, 첩보물과 결합했다.

항일 운동이 콘텐츠 소재로서 수명을 다했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경성크리처’는 일본에서“731부대를 처음 알았다”는 반응을 얻으며 톱10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인 필리핀, 베트남, 대만 등에서도 선두를 다툰다. 공 평론가는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더한 시대물은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해외에서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높은 완성도가 보장되면 특정 지역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인 가치를 역설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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