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뒤집은 ‘엡스타인 명단’이 궁금하다면 [주말뭐봄]

기사승인 2024-01-13 06: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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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것은 많고 시간은 짧은 주말입니다. OTT를 볼지 영화관으로 향할지 고민인 당신, 어서 오세요. 무얼 볼지 고민할 시간을 쿠키뉴스가 아껴드릴 테니까요. 격주 주말 찾아오는 [주말뭐봄] 코너에서 당신의 주말을 함께 할 콘텐츠를 소개해드립니다. <편집자주>


미국 뒤집은 ‘엡스타인 명단’이 궁금하다면 [주말뭐봄]
재판받는 제프리 엡스타인. AP·연합뉴스

올해 초 미국을 들썩이게 한 문서가 공개됐다. 일명 ‘엡스타인 명단’이다. 약 950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건엔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수십 명의 이름이 담겼다. 영국 앤드루 왕자, 미국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도 이 문건에 언급됐다. 현지 언론은 연일 문건에 언급된 유명인사들을 다루기 바쁘다. 미국에 핵폭탄급 충격을 안긴 이 명단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어땠어?

‘엡스타인 명단’이 나온 배경을 알고 싶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를 추천한다. 엡스타인은 미성년 여성들을 성 착취한 혐의로 2019년 체포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 다큐멘터리는 피해자들 증언을 통해 엡스타인의 범행 수법을 폭로한다. 그는 ‘마사지를 해주면 200달러를 주겠다’며 어린 여성들을 집으로 부른 뒤 성폭력을 저질렀다. 친구나 동생을 데려오면 돈을 더 주겠다고 꼬드기기도 했다. 이렇게 늘어난 피해자는 최소 150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미국 뒤집은 ‘엡스타인 명단’이 궁금하다면 [주말뭐봄]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스틸. 넷플릭스

엡스타인은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트라우마를 겪어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자아이들을 주로 노렸다. 성폭력을 저지르면서도 ‘네 꿈을 이뤄주겠다’거나 ‘너는 내게 특별한 존재다’라고 피해자들을 길들였다. 피해자들은 쉽게 달아나거나 신고하지 못했다. 그가 가진 막대한 재산과 인맥을 두려워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 10대 중·후반의 어린 나이였다. 권력을 가진 어른 앞에서 그들은 스스로 보호할 방법을 몰랐다. 부모가 죽거나 약물에 중독돼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의 피해자도 많았다.

엡스타인을 처벌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리아 파머는 1996년 엡스타인과 그의 여자친구 길레인 맥스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여동생 애니도 엡스타인에게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자매는 FBI에 신고했으나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다. 2005년에도 팜비치 경찰이 미성년자 성범죄 신고를 받고 엡스타인을 조사했다. FBI도 공조해 사건을 연방 검찰에 넘겼다. 죄목은 미성년자 36명에게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 종신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엡스타인은 매춘부 상대 성매매 혐의 2건만 인정했다. 피해자들이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매춘부라 규정한 것이다. 검사와는 감형을 협상해 징역 13개월만 받았다. 형기 중에도 일주일에 6일간 매일 12시간씩 외출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미국 뒤집은 ‘엡스타인 명단’이 궁금하다면 [주말뭐봄]
‘엡스타인 명단’ 공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AP·연합뉴스

다큐멘터리는 엡스타인 사건을 통해 권력형 성범죄가 얼마나 피해자를 압박하는지, 그루밍 성범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상기시킨다. 사법 체제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얼마나 큰 무력과 고립감을 경험하는지도 보여준다. 약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공개 당시 미국에선 “젊은 여성(피해자)의 특정 사진을 보여주는 데 지나치게 의존한다”(할리우드리포트), “인터뷰가 산발적이고 스토리텔링이 조잡하다”(인디와이어)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나”라고 묻는 한국에서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여전히 귀하다.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착취를 도운 길레인 맥스웰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주목! 이 인물

‘엡스타인 명단’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엔 성범죄 생존자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있었다. 그는 2015년 맥스웰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사건을 맡은 뉴욕 연방법원은 피해자 증언 등이 담긴 소송 관련 문건 속 인물 150여명의 실명을 밝히라고 지난해 말 명령했다. ‘엡스타인 명단’으로 널리 알려진 문건이 바로 이것이다. 다만 문건에 거론된 인물 모두가 성범죄에 연루되지는 않았다. 주프레는 다큐멘터리에서 “‘그자는 심판받아야 해. 책임을 지게 하자’며 그들(엡스타인·맥스월)을 잡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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