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퇴장방지의약품…공급차질·생산악화로 잇단 퇴장

최근 3년간 생산·수입 중단 퇴방약 46개
대원제약 ‘대원디아제팜주사액’, 3월 공급 완전 중단
비씨월드제약 ‘튜톨정’·영풍제약 ‘파소질정’ 품목 자진 취하
‘수급 불안정 의약품 공급관리위원회’ 신설 법안 국회 계류

기사승인 2024-01-21 06: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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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퇴장방지의약품…공급차질·생산악화로 잇단 퇴장
쿠키뉴스 자료사진

의약품 수급 불안정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하다고 인정받아 지정된 퇴장방지의약품도 공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시설 노후화나 채산성 악화 등으로 인해 생산을 중단한 의약품도 있어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퇴장방지 의약품 중에서 최근 3년간 생산 혹은 수입이 중단된 의약품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46개다. 퇴장방지의약품(퇴방약)이란 환자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나 채산성이 없어 생산이나 수입을 기피하는 약제를 정부가 지정·관리하는 의약품을 일컫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퇴방약 목록을 보면 올해 1월 기준 626개 품목이 지정돼 있다.

제약사들은 몇 년째 의약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총 428건의 의약품 공급 중단·부족 보고가 이뤄졌다. 지난해 4분기부터 현재까지 보고 건수만 59건에 달한다. 최근엔 대장암, 췌장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 치료에 사용하는 항암제 ‘5-플루오로우라실(5-FU)’이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품절돼 암환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2010년부터 퇴방약으로 지정돼 있는 5-FU는 JW중외제약이 독점 판매하고, 일동제약이 위탁 생산을 맡고 있다. 이에 식약처는 일동제약 한곳밖에 없는 5-FU 생산처를 확대하기 위해 국내 제약사들에 협조를 요청했고, 1개 제약사가 추가 생산을 결정했다. JW중외제약과 일동제약도 5-FU 생산량 확대에 협조하기로 했다. 현재 속도대로면 2월 중엔 5-FU 공급이 정상화될 전망이다.

시설 노후화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퇴방약은 또 있다. 대원제약은 지난 9일 ‘대원디아제팜주사액’(성분명 디아제팜, 수출명 데팜주사액)’의 공급 중단을 식약처에 알렸다. 대원디아제팜주사액은 불안·긴장·우울 치료 등에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대원디아제팜주사액 최종 공급 일자는 약 2년 전인 2022년 2월8일이다. 대원디아제팜주사액이 퇴방약으로 지정된 것은 지난 2일로, 대원제약은 오는 3월 공급을 완전히 중단할 예정이다. 대원디아제팜주사액 10㎎/2㎖의 가격은 283원이다.

비씨월드제약도 퇴방약으로 지정된 결핵 치료제 ‘튜톨정800㎎’(성분명 에탐부톨염산염)에 대한 공급 중단을 지난 5일 보고했다. 비씨월드제약 측은 중단 사유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들었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란 오리지널 의약품과 주성분, 함량, 제형 등이 동일한 제네릭(복제약)의 동등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험이다.

튜톨정800㎎은 올해 의약품 동등성 재평가 대상 품목으로 분류돼 식약처에 시험 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제조원가 대비 낮은 의약품 판매 가격으로 시험에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채산성이 맞지 않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에 비씨월드제약은 튜톨정800㎎에 대한 동등성 재평가를 진행하지 않고 자진 취하를 진행할 방침이다. 튜톨정800㎎ 한 정당 가격은 272원이다.

영풍제약의 항원충제 ‘파소질정300㎎’(성분명 티니다졸)도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하지 않고 품목 자진 취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파소질정300㎎ 한 정당 가격은 85원에 불과하다. 동등성 재평가 대상으로 지정된 품목은 기한 내 시험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받는다. 1차 판매업무 정지 2개월, 2차 판매업무 정지 6개월, 3차 땐 허가가 취소된다.

원료 수급이 어려워져 공급을 중단한 퇴방약도 있다. 지난해 11월 리튬 수요 급등으로 원가가 상승해 원료 수급에 난항을 겪던 명인제약의 조울증 치료제 ‘명인탄산리튬정’도 지난 3일 공급이 중단됐다. 명인제약은 해당 원료의 다른 제조원을 검토 중으로, 적합한 원료의약품을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 공급을 재개할 계획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약이 없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퇴방약의 생산·수입 원가보전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영미 대한약사회 정책홍보수석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제약사들 사이에서도 국가필수의약품이나 퇴장방지의약품 공급에 최대한 협조하겠단 의지는 높다”면서도 “국내 보험약가가 외국에 비해 높지 않기 때문에 채산성이 나지 않아 생산을 꺼린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원료 수급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들이 완제품 생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적정 수익을 보전해 주는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품절의약품 대응을 위한 민관협의체도 상설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연한 정책 규제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관계자는 “국민의 건강,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완벽한 대응이 준비돼야 한다”며 “의약품의 품질과 관련 없는 행정적인 절차를 개선해야 공급 문제를 최소화하고 문제 발생 시 원활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정부에 필수약, 퇴방약의 약가 가산을 요청했고 기준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도 건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약사회, 제약바이오협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등과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공조하고 있다. 민관협의체와 의약품 관리시스템 제도화도 추진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련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수급 불안정 의약품 공급관리위원회를 신설하고 품절약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골자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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