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의료현장 붕괴 현실로…‘소아 투석’ 의사도 떠난다

기사승인 2024-04-25 06: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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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의료현장 붕괴 현실로…‘소아 투석’ 의사도 떠난다
국내 유일의 소아청소년 콩팥병센터를 지키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들이 최근 사직서를 내고 오는 8월31일까지만 근무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소아 의료현장 붕괴를 앞당기고 있다. 국내 유일의 소아청소년 콩팥병센터를 지키던 담당 교수들은 최근 사직서를 내고 환자 곁을 떠나기로 했다. 이대로 가다간 겨우 유지해온 소아 신장 진료 명맥이 완전히 끊길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강희경·안요한 교수는 지난달 28일부터 환자들에게 오는 8월31일까지만 근무한다는 사실을 안내하고 있다. 이들은 안내문을 통해 “저희의 사직 희망일은 8월31일로,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환자를 보내드리고자 하니 희망하는 병원을 결정해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여러분 곁을 지키지 못하게 돼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소아 신장질환을 볼 수 있는 전문의가 있는 병원은 서울의 경우 강북권 3곳과 강남권 3곳 등 6곳이고, 경기권은 7곳, 그외 지역병원은 9곳이라는 내용도 안내에 포함됐다. 이어 고려대안암병원은 7월 이후, 전남대병원은 9월 이후, 인하대병원은 2025년 3월 이후에나 진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환자와 보호자들의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은 국내에서 단 한 곳뿐인 소아청소년 콩팥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서 진료하는 소아신장분과 교수는 사직 의사를 밝힌 두 교수가 전부다. 소청과 소아신장분과는 만성 콩팥병을 앓고 있는 체중 35㎏ 미만 소아의 투석 치료 등 신장질환을 전문으로 보는 소청과 세부 전문의 중 하나로, 필수 중의 필수진료과로 꼽힌다. 현재 전국에 활동하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수는 35명에 불과하다.

각 진료과별로 소아 환자 치료에 특화돼 있는 세부·분과 전문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다. 병원당 1~2명만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아예 없는 병원도 수두룩하다. 저출산, 저수가, 고위험, 법적 분쟁, 악성 민원 등 소아 진료를 기피하는 원인이 다양한데 소아신장분과는 조금 더 특별하다.

소아 투석 환자는 선천적·유전적 영향으로 콩팥 기능이 저하돼 투석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일주일에 세 차례 4시간씩 혈액 투석을 받거나, 매일 집에서 최대 10시간에 달하는 복막 투석을 해야 한다. 혈액 투석 시 아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까지 같이 씻겨내기 때문에 의학 교과서에선 복막 투석을 권장하고 있다. 

투석이 궁극적인 치료법은 아니다. 콩팥을 이식받기 전 아이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처치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식 받기가 굉장히 어렵단 것이다. 소아는 몸이 작기 때문에 성인의 큰 신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같은 소아 신장을 이식받는 수밖에 없는데 구하기가 힘들다. 소아 환자가 뇌사자의 콩팥을 이식받으려면 보통 4년은 대기해야 한다. 결국 아이가 어른 신장을 이식받을 정도로 클 때까지 투석을 받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소아신장분과 의사가 얼마 없는 것과 더불어 성인 투석 환자에 쓰는 장비가 소아에 쓰는 것과 다르단 점도 소아 투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거의 모든 병원의 투석실 장비는 성인용이다. 투석에 필요한 작은 필터부터 바늘까지 소아용이 따로 있긴 하지만 이를 별도로 구비한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김성남 대한투석협회 이사장은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 소아 환자 치료는 전문성이 담보돼야 하는 영역”이라며 “국내에 수백 개의 인공신장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병원에서 소아 투석 환자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장내과 전문의나 규모 있는 종합병원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소아 투석 환자라고 전한다. 그만큼 방대한 의료지식과 술기를 갖춘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란 건데, 이번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교수들의 사직으로 소아 투석은 더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투석 전문의인 이동형 범일연세내과 원장은 “성인과 소아는 다른 생명체다. 치료방식이나 반응이 완전히 다른 만큼 소아에 맞는 적정 치료를 해야 하는데 이제 그게 더 어렵게 됐다”면서 “그동안 계속 묻어둔 채 쌓아왔던 문제가 의료공백 사태로 시한폭탄처럼 터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가가 정말 소아 진료를 필수의료로 생각하고 살리고자 한다면 획기적 지원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소아·필수의료를 살리겠단 약속을 더 지키기 어렵게 됐다. 작년 2월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필수의료인 소아 의료체계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소아 의료체계 강화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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