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전하는 가장 다정한 위로, ‘원더랜드’ [쿡리뷰]

기사승인 2024-06-0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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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전하는 가장 다정한 위로, ‘원더랜드’ [쿡리뷰]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불치병에 걸린 바이리(탕웨이)는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싶다. 그래서 망자를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서비스, 원더랜드에 자신을 의탁한다. 정인(수지)은 식물인간 상태인 남자 친구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 속에 옮겨놨다. 평온한 삶을 위해 원더랜드를 각각 찾은 두 사람은 이내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 당황한다.

다신 볼 수 없던 망자를 만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영화 ‘원더랜드’(감독 김태용)는 이 같은 상상에 날개를 달아준다. 원더랜드는 망자가 AI(인공지능) 형태로 영생할 수 있는 곳이다. AI로 복원된 이들은 원하던 배경에서 꿈꾸던 직업을 갖고 존재한다. 죽은 이의 기억을 토대로 생전 소중한 이들과 교감을 이어간다.

원더랜드 속 사람들은 망자이지만 동시에 망자가 아니다. 객체이자 또 다른 주체로서 자신이 죽은지 모른 채 가상공간에서 살아간다. 그들을 대하는 이용자들은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가상 세계에 과몰입해 현실 속 자신을 돌보지 않거나 원더랜드 속 망자를 낯설어하며 경계한다. 서비스를 십분 활용하는 이도 있다. 연인이던 태주의 좋았던 면을 극대화해 생활 전반을 공유하는 정인이 그렇다. 원더랜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해리(정유미) 역시 일찍 여읜 부모님과 원더랜드로 소통하며 가족의 정을 느낀다.

AI로 전하는 가장 다정한 위로, ‘원더랜드’ [쿡리뷰]
‘원더랜드’ 스틸컷.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는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던 기존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망자를 복원하는 서비스가 인간 삶에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는지를 비춘다. 동시에 부작용도 그려낸다. 정인은 태주가 기적적으로 깨어나자 AI 태주와 현실 속 태주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다. 만질 수 있어 기뻐했던 것도 잠시, 사고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태주에게 실망한다. 태주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바이리 가족은 원더랜드로 인해 갈등이 생긴다. 바이리 엄마 화란(니나 파우)은 AI 바이리가 친딸처럼 구는 게 영 거북하다. 와중에 손녀 지아(여가원)가 휴대폰 속 엄마에게 지나치게 빠져 살자 위기감을 느낀다. 각 인물의 양상을 담담히 그려내며 관객에게 생각을 뻗어가게 한다. 

‘원더랜드’는 4년 전 촬영을 마쳤다. AI가 보편적이지 않던 당시와 달리 현재는 망자를 AI로 복원하는 예능이 나왔을 정도로 기술이 상용화됐다. 작품이 현실과 밀접해지자 몰입감은 자연히 커진다. 복합적인 감정을 묘사한 탕웨이를 비롯해 생활감 느껴지는 수지의 연기와 사실상 1인 2역인 박보검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특히 수지와 박보검의 조합은 ‘원더랜드’가 거둔 수확이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그리다 보니 연결성이 희미한 부분도 있다. 이로 인해 정유미와 최우식이 맡은 원더랜드 플래너 해리와 현수는 기능적으로만 쓰인다는 인상을 준다. 다만 각각의 서사에 집중한 결과가 후반부에 빛을 발한다. 엄마와 딸 사이에 놓인 바이리의 처지와 달라진 환경에서 갈등하는 정인과 태주의 결말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 그들에게 자신은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다 보면 마음에 다정한 위로가 남는다.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3분. 쿠키 영상 1개.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