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암 치료 끝나면 ‘동료지원가’ 하고 싶어요”

암 환자 54%는 우울·불안·심리적 고통 경험
환우 간 정서적 지지·정보공유 프로그램 만족도 높아
지역사회 보건소 중심 암 관리·정신건강 정책 통합적 시각 필요

기사승인 2022-12-23 16: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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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암 치료 끝나면 ‘동료지원가’ 하고 싶어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암 환자의 심리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암 관리 사각지대 체크포인트: 암 환자 심리에서 길을 찾다’ 정책 토론회에서 암 환자 동료지원 프로그램 연구에 참여한 이향우 동료지원가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처음 암 진단을 받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부터 큰 용기가 필요해요. 암 환자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고충을 털어놓고, 공감을 받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암 환자 동료지원 프로그램 연구에 참여한 이향우 동료지원가는 암 환자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보호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암 투병 경험이 있는 그는 암 환자들에게 정서적 지지와 정보를 제공하는 동료지원가로 활동했다. 이 지원가는 “일반 국민들이 각 지자체에서 무료로 심리상담을 제공받듯, 암 환자들도 보건소와 시·군청의 도움을 받는다면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암 환자의 심리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암 관리 사각지대 체크포인트: 암 환자 심리에서 길을 찾다’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심리학·의학전문가, 환자단체 등 각계 참석자들은 신체적인 치료뿐 아니라 정신보건의료 분야의 치료가 병행 지원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암 진단 및 치료 과정은 신체적 고통만큼 정신적 고통도 크다. 국립암센터 연구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 가운데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까지 생활 속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 ‘디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디스트레스는 우울증, 불면, 재발에 대한 두려움, 의료비 부담 등으로 유발됐으며, 암의 전 주기에 걸쳐 나타났다.

환자들은 심리적 지지와 정보 제공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암 환자의 54%는 사회적인 심리지원을 원하고 있었으며, 특히 암 진단 1년 미만의 시기에 수요가 더 높았다. 질환 및 치료법, 검사 결과, 치료 경과 등 의료적 정보뿐 아니라, 사회복지 서비스와 식이 및 운동 등 부가적인 정보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환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은 암을 경험한 환우들이었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정신의학, 정신간호학, 임상심리학, 사회복지학, 종양간호학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학제 연구팀을 구성해 암 환자 심리지원을 위한 환자 간 심리지지 프로그램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는 환자단체 6곳이 참여해 암 치료 중인 환자, 암 투병 경험이 있지만 더는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암 생존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연구진은 암 환우 동료지원가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을 통해 총 6명의 지원가를 양성했다. 이후 암 환자 동료지원 프로그램 ‘SPRING’을 운영, 총 10명의 환자를 선발해 지원가들과 매칭했다. 환자들과 지원가들은 ‘치료 종결 후 건강관리’, ‘지원제도 알아보기’ 등의 정보공유와 ‘몸과 마음 충전하기’, ‘가족과 암’ 등 심리건강 상담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프로그램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66점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환자는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며 “환자는 집에 드러누워 있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동료지원가들이) 보여주셔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여 환자는 “동료지원가와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며 “지지해주는 마음과 배려 등 모든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건강이 안정화한 이후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싶다는 환자도 나왔다.

“저도 암 치료 끝나면 ‘동료지원가’ 하고 싶어요”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유은승 고려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동료지원 프로그램은 암 환자들의 심리지원을 위한 주요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며 “암 환자 동료지원을 위한 사회적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그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은 건강을 되찾은 이후 사회활동에 대한 의지가 높아졌고, 동료지원가 역시 자신감과 책임감이 매우 높아져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며 “사회적으로도 의료진의 부담을 완화하고, 의료비 지출을 감소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현정 올캔코리아 전문위원은 “동로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보건소를 활용할 수 있다”며 “참여자들이 비슷한 암질환을 겪었으며 거주 지역도 가까우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워 프로그램의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로그램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안정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며 “(동료지원가를) 완치한 암 경험자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수진 울산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자신의 암 투병 경험을 공유하며 “의사인 나조차 암 진단 이후 적지 않은 우울과 불안을 느꼈다”며 “환자들의 심리적 지원에 대한 미충족 수요는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암 환자에게 심리적 영향을 주는 요인이 다양하므로, 스크리닝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서는 전문가도 부족하기 때문에 정신종양학 분야를 더욱 확충하고, 간호사와 임상심리 전문가도 보다 풍부하게 양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한숙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암 5년 생존률이 70%가 넘는 현재 국내 상황에 맞지 않게, 그동안 관리정책은 항암치료 자체에 집중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만 받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복귀 이후까지의 통합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해에 따라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라는 개념이 등장한지 10년 정도가 됐다”며 “아직까지 심리지원의 측면에서는 확충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접근성이 좋은 보건소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책적인 측면에서 단순히 기존의 암 관리 정책 차원이 아니라, 정신건강과 결합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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