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너머에서 만난 위로, ‘스즈메의 문단속’ [쿡리뷰]

기사승인 2023-03-08 06: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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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너머에서 만난 위로, ‘스즈메의 문단속’ [쿡리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쇼박스

일상을 뒤흔드는 경험은 때때로 아무렇지 않게 찾아온다. 여느 때처럼 등교하던 고등학생 스즈메는 폐허를 찾던 청년 소타를 만나 재난을 여는 문을 알게 된다. 믿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스즈메는 도망치지 않고 부딪히기로 한다. 깨어난 요석 다이진을 잡고 재난의 문을 닫아야 하는 스즈메. 그의 곁은 의자에 혼이 갇힌 소타가 지킨다. 두 사람은 끊이지 않는 재난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은 판타지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재난을 막는 문이라는 중심 소재를 토대로 뻗어간다. 규수부터 시코쿠, 고베, 도쿄에 이르기까지, 재난을 막기 위해 전 일본을 돌아다니며 스즈메는 필사적으로 문을 닫는다. 평범한 여고생이던 스즈메가 처음부터 인류 구원과 같은 거창한 사명감을 가진 건 아니다. 가족, 이웃, 친구들을 지키겠다는 작은 마음은 점차 모두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자라난다. 겁먹던 그는 쇼타의 격려에 힘입어 용기를 얻고 두려움에 맞선다. 

문단속은 작품을 설명하는 중요 요소다. 위험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설정은 직관적이고 명쾌하다. 문 너머에서 몰려오는 재난을 막기 위해 스즈메는 끊임없이 문을 닫는다. 문을 잠그려면 열쇠가 필요한 법. 재난은 무너진 마을에서 시작한다. 폐허가 된 그곳의 찬란한 과거를 떠올려야 문을 잠글 수 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 그들을 오가던 수많은 감정, 저마다의 목소리… 스즈메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폐허의 시간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지금은 갈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있지 않나. 마음에 묻어둔 장소는 있지만, 사람이 아닌 장소를 애도하고 반추하는 일은 드물다. 이 지점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은 자연스럽게 보는 이들의 마음 한 구석을 건든다.

문 너머에서 만난 위로, ‘스즈메의 문단속’ [쿡리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쇼박스

극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비춘다. 스즈메는 열심히 해답을 찾아간다. 무모할지라도 멈추지 않는다. 애절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스즈메는 치열하게 매달린다. 자신이 아닌 모두를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도 잊고 있던 마음속 아픔을 마주하고, 치유한다. “만나러 갈게”, “다녀왔어”와 같은 일상적인 말들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스즈메가 얼마나 진심으로 달려왔는지를 봐와서다. 새로운 사람, 낯선 장소를 거칠수록 스즈메의 세계는 넓어진다. 스즈메가 다녀간 여러 도시의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름다운 영상미가 작품 곳곳에 포진해 있다. 틈틈이 나오는 과거 인기 가요를 듣는 맛도 좋다.

스즈메는 이타적이다. 사람을 향한 그의 마음에 화답하는 따스한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낯선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좋은 사람들의 존재가 극에 활기를 더한다. 스즈메와 타마키 이모의 이야기는 현실과도 맞닿은 지점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웃음과 공감, 치유를 자유로이 오간다. 스즈메와 소타는 세상을 구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구원하는 존재다. 이들 사이 감정 변화가 극에 온전히 어우러지진 않는다. 소타를 구하고자 하는 스즈메의 선한 의지가 애정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다소 헐겁게 느껴진다. 다만 작품이 주는 치유와 희망의 정서가 여러 부분을 상쇄한다. 얄미우면서도 귀여운 고양이 다이진의 존재감도 크다. 영화가 끝나도 스즈메를 부르는 다이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전작 ‘너의 이름은.’에 이어 동일본 대지진을 대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시각도 흥미롭다. 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22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