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 저널리즘을 묻는다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3-03-15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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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에 저널리즘을 묻는다 [친절한 쿡기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포스터. 넷플릭스

‘성희롱·성폭력 사건 범행내용을 선정적으로 재연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언론에 권고하는 성폭력·성희롱 보도 실천 요강의 일부입니다. 왜 이런 강령이 필요할까요. 자극적인 삽화나 영상은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등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삼스러운 권고 사항을 다시 떠올린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을 본 후부터입니다. OTT 콘텐츠에 저널리즘을 물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고 느꼈거든요.

지난 3일 공개된 ‘나는 신이다’는 한국 사이비 종교에서 불거진 여러 범죄 혐의를 조명합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의 성범죄 의혹을 다룬 1~3화가 특히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정 총재는 신도 성폭행 등 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18년 2월 출소했는데요. 이후로도 또 다른 여성 신도를 추행·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현재 대전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정 총재의 성범죄 혐의를 적나라하게 까발립니다. 전직 신도 메이플씨가 제공한 녹취록엔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여성 신도들의 나체 영상도 얼굴만 모자이크된 채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해당 영상 속 여성 신도들이 정 총재 등에게 심리적으로 지배되는 등 항거 불능의 상태로 추정돼 논란의 여지가 더욱 큽니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의 성폭력을 다룬 7~8화도 문제 소지가 있습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카메라는 피해자를 재연하는 배우의 등과 다리 등 신체를 클로즈업합니다. “언니(피해자)는 진짜 예뻤다” “몸도 여리여리하고” 등 피해자 외모를 묘사한 대사도 나옵니다. 각각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부적절한 삽화, 영상 등을 사용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다’는 보도 준칙에 부합하지 않는 장면입니다.

OTT에 저널리즘을 묻는다 [친절한 쿡기자]
조성현 PD. 넷플릭스

조성현 PD는 말했습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 안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었다”(지난 10일 ‘나는 신이다’ 기자간담회)고요. 여성 신도들의 나체 사진을 모자이크해 방송했을 당시 JMS 쪽에서 조작 사진이라고 반박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도 성범죄 재연 방식을 두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을 말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줘야 시청자들에게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조 PD 판단을 존중해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겁니다.

사이비 종교단체 내 범죄 혐의에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나는 신이다’의 의의를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OTT의 역할을 묻고자 합니다. OTT 콘텐츠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아 방송 심의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지상파 등 보도 채널을 가진 방송사들이 내부적으로 두고 있는 보도 지침도 없습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국내외 다양한 콘텐츠 제작 경험을 토대로 제작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방향을 잡습니다. 다만 창작자의 제작 의도를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쿡기자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렇습니다. ‘나는 신이다’처럼 보도 기능을 수행하는 OTT 콘텐츠에, 과연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제작 방식일까요.

어쩌면 플랫폼과 제작자에게만 책임 지울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조 PD는 되물었습니다. “메이플이 방송에 출연한 게 처음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많은 방송과 언론이 이 사건을 다뤘는데, 어떻게 JMS는 존속할 수 있었을까요.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나요. 함께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혹 우리는 어지간한 충격이 아니고서는 너무 쉽게 사건을, 또 피해자를 잊었던 게 아닐까요. 저널리즘 윤리를 완성하는 힘, 그것은 플랫폼과 제작자, 나아가 시청자(독자)에게도 있는 게 아닐까요. 조 PD의 당부대로 이제라도 함께 고민을 나눌 때입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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