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으로 끝난 ‘데이원 사태’…프로농구의 미래는 [KBL]

리그 가입비도 제 때 내지 못한 데이원, 결국 KBL 회원 자격 박탈
KBL도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음달 중순까지 인수 기업 찾지 못할 경우, 선수들 특별 드래프트 진행

기사승인 2023-06-19 17: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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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끝난 ‘데이원 사태’…프로농구의 미래는 [KBL]
지난해 8월 창단식에서 공개된 고양 캐롯 점퍼스(현 고양 데이원) 마스코트 대길이.   사진=임형택 기자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이 결국 ‘리그 퇴출’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향후 프로농구의 존속에도 적잖은 잡음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임시총회 및 이사회를 개최하고 데이원의 회원 자격 관련에 대해 논의한 끝에 리그에서 제명시키기로 최종 결정했다.

김희옥 KBL 총재는 임시총회가 끝난 뒤 “데이원이 정상적으로 구단을 운영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고 최종 확인했다”면서 “데이원은 선수 연봉 체불 등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거짓과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 리그의 안정성을 훼손했다”고 언급했다.

시작부터 불안했던 데이원…가입비 납부 지연부터 선수단 임금 체불까지

데이원 구단은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법인 데이원자산운용이 지난해 7월 고양 오리온을 인수해 창단됐다. ‘농구 대통령’ 허재를 대표이사로 내세웠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처럼 캐롯손해보험과 4년간 120억원에 달하는 네이밍 스폰서도 유치했다.

하지만 시즌 시작 전부터 잡음이 일었다.

지난해 6월 KBL 신규 회원사 가입 심사 과정에서 자금 및 운영 계획 등의 자료가 부실해 승인이 한 차례 보류됐다. 시즌 개막 전에는 KBL 가입급 15억원 중 우선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5억원을 마감일까지 내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개막 직전 “리그에 불참시킬 수 있다”는 KBL의 최후통첩이 떨어지고 나서야 1차 가입금을 납입하면서 시즌에 정상적으로 참여했다.

시즌 도중에는 모기업이었던 대우조선해양건설이 직원 임금 체불, 하도급금 지연 등 자금난에 빠져 지난 2월 법원이 기업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릴 정도로 경영이 악화했다.

이로 인해 지난 1월부터는 사무국 등 직원, 선수단에 급여를 제대로 주지 못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임금 체불액만 12억원이 넘는다. 또한 양수도 계약을 맺은 오리온 측에 구단 인수 대금도 제때 내지 못해 경기 입장 수익 일부로 대체했다. 이외에도 시즌 진행 중 협력 업체에도 3억원이 넘는 대금을 주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임금 체불을 겪은 선수들은 경기 준비에 필요한 구단의 기본적인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데이원의 주장 김강선은 지난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선수단 월급은 물론 식비나 용품 구매 지원도 안 돼서 모두 선수들 사비로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라며 “결혼을 한 선수도 있고 준비 중인 선수도 있는데 모두 돈이 없어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구단에서는 저희에게 월급을 줄 것이라고 했고 저희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승기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사비로 선수들을 챙겨야 했다. 손규완 데이원 수석코치는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손창환 코치는 군대가는 선수들을 밥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시즌 종료 후 공사장에서 임시 일용직을 경험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파국으로 끝난 ‘데이원 사태’…프로농구의 미래는 [KBL]
KBL 공인구. 한국농구연맹(KBL)

KBL도 ‘데이원 사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데이원 사태에 KBL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BL은 신규 회원사 가입 심사 과정에서 한 차례 승인을 보류했지만, 끝내 데이원의 가입을 승인했다. 당시 농구계에서는 데이원스포츠의 가입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10구단 체제 유지가 급선무였던 KBL은 결국 가입을 승인했다.

농구단에 이어 프로축구단 창설을 추진한 데이원자산운용에 대해 부실 우려에 따른 기본 점수 미달을 이유로 가입을 거절한 프로축구연맹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정부도 KBL의 책임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7일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구단과 모기업뿐 아니라 KBL에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KBL이 선수 미지급 임금 지급, 선수 생활 보장, 인수 기업 유치에 대한 대책을 신속하고 성의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L은 ‘선수 보호’로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KBL은 19일부터 2022∼2023시즌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던 고양체육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4월19일 시즌을 마친 데이원 선수들은 ‘60일 단체훈련 제한’ 기간이 풀리자마자 몸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또 KBL은 이달부터 선수들의 급여를 지급하고 추후 적절한 방법을 통해 환수할 방침이다.

KBL 측은 “고양시와 협의를 마쳐 선수단이 훈련을 할 수 있게 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트레이너를 고용해 데이원 선수단 훈련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점심, 저녁 식사 비용도 부담하기로 했다. 더불어 긴급생활자금 지원 및 급여 지급 등을 위한 준비는 물론 데이원스포츠 측에 책임을 묻는 조치도 속도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농구계 관계자는 “데이원이 프로농구에 뛰어들 때만 해도 모두가 반대했다. 데이원의 능력을 모두가 의심했다”라면서 “하지만 당시 KBL의 입장도 난처했을 것이다. 프로축구는 이미 1·2부를 합쳐 구단이 25개나 되지만, KBL은 데이원의 가입 승인을 받지 않았다면 9개 구단 체제로 시즌을 진행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리그의 규모가 줄어드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데이원 사태에 KBL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선수단과 팬들을 위해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특히 선수단 뿐만 아니라 보호권에서 벗어나 있는 코칭 스태프와 사무국 직원을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파국으로 끝난 ‘데이원 사태’…프로농구의 미래는 [KBL]
지난 16일 고양 데이원의 회원사 자격 박탈을 발표하는 김희옥 KBL 총재. 연합뉴스

다9구단 체제? KBL의 향후 운명은

이제 관심은 프로농구의 10개 구단 유지 여부로 몰린다. 

KBL은 “부산시가 남자 프로농구단 유치 의사를 강하게 밝힌 점을 고려해 우선 부산시와 새로운 인수 기업 물색을 포함한 후속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KBL은 현재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새 구단 창단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부산시는 오랜 기간 남자프로농구단의 연고지였다. 프로농구 원년에는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현대모비스)가 부산을 연고지로 활동했다. 2003년부턴 KTF(현 KT)가 부산을 연고지로 삼았다. 그러다 2021년 수원시로 연고 이전을 했다. 현재는 여자프로농구 BNK 썸이 부산을 대표하는 농구팀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매체에 따르면 부산시는 데이원 농구단을 인수할 새로운 스폰서로 BNK금융그룹 또는 르노코리아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곳 모두 농구단 인수에 관심은 갖고 있으나,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에서 이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원 인수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각종 부채와 구단 인수대금도 없어지면서 인수 희망 기업에는 더 나은 환경에서 프로농구단을 유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다음달 21일까지 구단 인수가 불발될 경우 KBL은 선수단 18인에 대한 특별 드래프트를 진행할 방침이다. 데이원에 소속됐던 선수 18명이 남은 9개 팀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팀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 경우 프로농구는 다음 시즌부터 9개 구단 체제로 축소된다. 프로농구는 1997년 리그 출범 당시 8개 구단으로 시작했다가 다음 시즌부터 서울 SK와 창원 LG가 합류해 10개 구단으로 늘어나 지금까지 이어졌다.

농구계 관계자는 “최근 프로농구가 조금씩 인기를 끌어올리던 시점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 안타깝다. 많은 농구인들은 10개 구단 체제로 프로농구가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라면서 “9개 구단 체제로 시즌이 진행되면 홈-원정 경기 배분, 플레이오프 진출 팀 수 등 고려할 상황이 많다.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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