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국가예방접종 백신 입찰 담합 업체 32곳…‘과징금 409억’ 철퇴

7천억원 규모 147건 낙찰 받아 들러리 세워 담합
담합 백신 품목 24개…“장기간 걸쳐 가담”

기사승인 2023-07-20 14: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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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국가예방접종 백신 입찰 담합 업체 32곳…‘과징금 409억’ 철퇴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가예방접종 백신 구매 입찰 과정에서 백신 사업자들이 합의해 사전에 낙찰사업자를 정하고 담합해 총 7000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입찰 담합한 녹십자, 유한양행 등의 업체들에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조달청이 발주한 170건의 백신 입찰에서 담합 행위를 벌였다. 담합은 170건 중 147건을 낙찰 받아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적발 업체에는 백신 제조사 1곳(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백신 총판(광동제약·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에스케이디스커버리·유한양행·한국백신판매) 6곳, 의약품 도매상 25곳 등이 포함됐다.

백신 제조사는 백신을 실제 생산하는 회사이고, 백신 총판은 백신 제조사와 공동 판매 계약을 체결한 회사다. 의약품 도매상은 이들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아 병·의원 등에 유통하는 회사를 말한다.

이들이 담합한 대상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 백신이다.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자궁경부암 백신, 폐렴구균 백신 등 모두 24개 품목에 이른다. 

백신 입찰 담합은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한 위원장은 “백신 입찰 시장에서 고착화된 들러리 관행과 만연한 담합 행태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돼 왔다”며 “이로 인해 입찰 담합에 반드시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가격 공유가 용이했다”고 지적했다.

보통 입찰 담합의 경우 낙찰예정자 정하기, 들러리 섭외하기, 투찰가격 공유 등을 위해 담합 참여자들 간의 협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담합 관행으로 인해 담합 참여자들 간의 협의가 쉬웠을 것이란 설명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 총판이 백신 입찰 담합에 가담해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기존 낙찰예정자 역할을 하던 의약품 도매상 대신 백신 총판이 나서는 방식으로 담합을 이어갔다.

특히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구 SK케미칼) 등 3개사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지난 2011년 6월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입찰 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이번 담합으로 낙찰 받은 147건 중 80%가량인 117건의 경우 낙찰 가격이 일종의 상한 가격인 기초금액의 10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으로 낙찰 받는 것에 비춰 봤을 때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 위원장은 “이번 입찰 담합으로 정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국내 백신 시장에서 수입, 판매, 공급을 맡은 사업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가담한 입찰담합을 제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