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가, 위선인가’ 대학가에선 PC 논쟁 중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3-07-24 06: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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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가, 위선인가’ 대학가에선 PC 논쟁 중 [쿠키청년기자단]
PC주의와 블랙워싱 논란을 일으킨 영화 인어공주.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소수자 집단을 향한 차별적 발언을 지양하는 사회 운동을 뜻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소수자에 대한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사회가 다변화됨에 따라 PC 논의의 영역으로 점차 확장됐고, 이제 다문화주의, 환경주의, 페미니즘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다뤄진다.

인어공주 이전에도 PC 논쟁은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은 이미 격렬한 논쟁 소재였다. 대표적 PC 논의로는 ‘제주 예멘 난민 사태’가 있다. 지난 2018년 여름,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에 피신해 온 예멘 국적 난민 500여명이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남겼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부정적 담론이 형성됐다. ‘예멘 난민 추방’을 취지로 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명 이상 찬성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난민 유입이 현 정부의 인권주의 정책 탓이라고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테러하는 사람들을 받아줘선 안 된다”며 무슬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해 여름 광화문 광장에서는 난민 입국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예멘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예멘 난민들이 한국전쟁 후 가난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국적만 다른 광부와 간호사라면?”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인종차별, 혐오 방지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라’며 정부에 적극적 지원을 촉구했다.

‘지성인가, 위선인가’ 대학가에선 PC 논쟁 중 [쿠키청년기자단]
지난 2018년 9월16일 오후 서울 보신각 맞은편 인도에서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난민 수용 반대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된다. 반대론자들은 난민을 옹호하는 종교인, 인도주의 단체에 ‘가르치려 들지 말라’, ‘가식 떨지 말라’거나 혹은 ‘PC충 아니냐’는 야유를 퍼부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인 정우성은 SNS 계정에 ‘난민과 함께해달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해 6월 싸이의 콘서트 ‘흠뻑쇼’를 두고도 여러 의견이 오갔다. 싸이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흠뻑쇼 1회당 관중에게 300t의 물을 뿌린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당시 전국의 농가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렸다. ‘가뭄이 심각한 만큼 물 낭비는 자제해야 한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PC 주의자들은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라며 ‘흠뻑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소 물을 그렇게 아끼냐’는 비난도 나왔다.

반 PC적 인식이 확산하며 ‘PC 묻었다’ ‘PC충’ 등 정치적 올바름을 비하하는 용어까지 생겼다.

영화 ‘인어공주’ 역할로 흑인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은 ‘PC 묻었다’며 비난했다. 그들은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 흑인을 캐스팅했고 원작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에서는 캐스팅 철회를 요구하는 해시태그 #NotMyAriel(내 에리얼이 아니야)까지 등장했다.


청년,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이유는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흐름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고, 그 가운데 청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청년들은 왜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할까.

한 청년은 진보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반 PC적 인식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수연(26·여)씨는 “진보 정당들이 겉으로는 정의, 공정을 강조하지만, 조국 사태,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일련의 사건을 봤을 때 자기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 어떠한 정치세력도 믿지 못하겠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지성인가, 위선인가’ 대학가에선 PC 논쟁 중 [쿠키청년기자단]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콘서트 ‘싸이흠뻑쇼 2022’에서 관객들이 물줄기를 맞으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던진 청년도 있었다. 이정수(26·남)씨는 환경단체가 미술작품에 토마토를 던져 공격한 시위를 예로 들었다. 그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공격 대상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자신의 가치만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면 PC에 반대하는 사람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수자 보호가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동현(25·남·가명)씨는 “PC가 소수의 의견만을 대변해 나머지 다수의 불편과 희생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절대적 강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며 청년 남성으로서 소외당한다고 주장했다.

반 PC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특히 2016년 미국 우선주의, 반 PC를 강조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전 세계가 빠르게 우경화됐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트집 잡기로 치부하기에는 당시 힐러리로 대변되는 민주당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진보 엘리트의 도덕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너무도 많았고, 그 결과 PC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반 PC 확산한 원인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세종대학교 문화산업학과 한송희 교수는 “한국의 반 PC 경향의 시작점에 좌파 엘리트 및 진보 정당이 놓여있다”고 분석했다. 안희정 사건,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조국 사태, ‘이대남’ 현상 등 진보 지식인들은 자멸하고, 혐오와 배제가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정동으로 자리 잡았다.

한 교수는 “현재 PC 논의는 진영논리나 흑백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며 “토론을 통해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사회 전체의 보편적 올바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류효림 쿠키청년기자 andoctober@naver.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