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싫어” 청년 게임 트렌드 변했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4-03-31 16:00:03
- + 인쇄
“경쟁 싫어” 청년 게임 트렌드 변했다 [쿠키청년기자단]
현실 경쟁에 치인 청년들이 게임 속 경쟁에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Pxhere

#대학생인 박승찬(24)씨는 최근 PC방에 가는 발길이 뜸해졌다. 친구들과 순위를 다투는 게임을 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기진맥진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대신 휴대전화로 귀여운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을 시작했다. 박씨는 “예전에는 사람들과 경쟁하는 게임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게임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 혼자 할 수 있는 게임만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수진(28)씨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괴물을 사냥하는 게임을 즐긴다. 김씨와 친구들은 각자 주어진 역할에 따라 게임 속 괴물을 공격한다. 서로 호흡을 맞춰 적을 쓰러뜨릴 때마다 김씨는 큰 성취감을 느낀다. 김씨는 “서로 긴밀하게 협동해서 어려운 적을 잡을 때마다 ‘함께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실 경쟁에 치인 청년들이 게임 속 경쟁에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경쟁에 염증을 느낀 청년들이 싱글, 협력 게임에 눈을 돌리면서 게임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청년 세대가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경쟁하는 게임은 못 하겠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타인과 경쟁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게임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야 하는데 오히려 지치기만 한다”고 토로했다.

해당 게시글은 10000여건에 달하는 조회수와 200여건의 추천수를 기록하며 네티즌에게 호응을 얻었다. “게임에서까지 경쟁을 강요당하는 느낌”, “유저들을 줄 세우는 것 같다”라며 글쓴이의 주장에 공감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청년들이 경쟁 게임에 피로를 느끼는 데에는 경쟁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꼽힌다. 게임에서 승리하거나 더 좋은 재화를 얻기 위해선 다른 유저와 필수적으로 경쟁해야 한다. 경향신문-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전국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59%가 ‘경쟁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응답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2023 글로벌 게임 플레이 영향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게임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문항에 응답한 비율이 53%로 가장 낮았다. 조사에 참여한 12개국의 평균인 71%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취업준비생 김영문(23)씨는 “현실에서의 경쟁을 잊기 위해 게임을 하는데, 게임에서도 경쟁하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쟁에 질린 청년들은 경쟁이 없는 싱글 게임이나 협력 게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모바일 게임 통계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2030 연령층을 대상으로 집계한 월간 유저 순위에서 키우기, 타이쿤(경영) 장르의 게임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들 게임은 유저가 경쟁을 거치지 않고서도 재화를 얻어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 일부 게임에서는 유저가 다른 유저와 직접 맞붙는 것이 아닌, 컴퓨터가 조종하는 적을 쓰러뜨려 점수를 비교하는 형태의 경쟁 콘텐츠로 유저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줄이기도 했다.

청년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는 유저간 협동을 내세운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4명이 한 팀을 이뤄 몰려오는 적을 쓰러뜨리는 ‘헬다이버즈2’와 여러 유저가 함께 협력해 괴물을 포획하는 ‘팰월드’가 번갈아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헬다이버즈2를 개발한 ‘애로우헤드’의 대표 요한 필레스테트는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우리는 플레이어가 서로 경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경쟁 콘텐츠를 절대로 추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서로가 지지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존에 경쟁 게임을 주로 서비스했던 넥슨, 네오위즈 같은 대형 게임사들도 청년 세대의 움직임에 발맞춰 ‘데이브 더 다이버’, ‘P의 거짓’ 등 솔로 플레잉(Solo-Playing) 게임을 출시했다. 솔로 플레잉 게임은 유저간 경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예 없는 대신 스토리와 캐릭터의 성장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한상욱 쿠키청년기자 hansangwook1005@gmail.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