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과거에 있는, 나는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기사승인 2023-09-12 15: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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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과거에 있는, 나는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12일 오전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 푸른나무재단이 서울 서초구 본부 앞에서 학교폭력 예방 퍼포먼스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학교폭력, 안전지대는 없다. 방관의 탈을 벗어라”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조유정 기자

# 소지품은 늘 더러워졌습니다. 잠깐 자리를 비우면 책상과 의자는 사라졌습니다. 서랍에는 쓰레기가 가득했습니다. 화장실에서는 물을 뿌리고 치마를 들춰봤습니다. 교복을 찢고 신체를 치고 가는 신체 폭력과 성희롱도 이어졌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작된 폭력은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 푸른나무재단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 김수연(24‧가명)씨는 “학교폭력은 완전한 회복이 없고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학교폭력은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박길성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은 “학교폭력이 복합적이고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어 학교 내 안전지대를 찾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학교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학교폭력의 진화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푸른나무재단이 지난해 12월19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전국 초·중·고교생 7242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 최근 학교폭력은 1인당 네가지 피해 유형을 경험했다. 피해 유형은 사이버폭력, 언어폭력, 괴롭힘, 신체폭력, 따돌림 등이 있다. 2020년 1.6개이던 피해 유형은 2021년 2.5개, 지난해 3.8개에 이어 4개로 늘어났다. 전년 대비 협박‧위협, 강요‧강제, 성폭력‧갈취 수치가 상승했다.

특히 사이버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사이버폭력은 올해도 피해 유형 중 25.8%로 1위를 차지했다. 피해 학생 98%는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푸른나무재단은 동급생의 옷을 벗기고 추행하는 모습을 SNS 라이브 방송에 내보내거나 계정을 도용해 게시물을 유포하고 교우 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등 악질적인 사이버폭력 사례를 함께 공개했다. 사이버폭력의 경우 피해 학생의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영상을 빠르게 삭제하는 경우 증거 수집이 어려워 대응이 어렵다. 

여전히 과거에 있는, 나는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12일 오전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 푸른나무재단이 서울 서초구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조유정 기자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등교를 거부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피해 학생 중 77.9%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자살‧자해 충동을 겪은 학생도 38.8%로 조사됐다.

피해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가해 학생의 사과다. 피해 후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18.2%, 피해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14.7%, 서로의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14.5% 순으로 조사됐다.

학교 폭력은 빠르고 회복을 중심으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 최선희 상담본부장은 “10명 중 3명은 사안 처리 이후에도 학교폭력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학교폭력은 피해받은 당시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최 상담본부장은 “처벌보다 피해 학생 회복을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각 시도교육청에서 운영되는 화해조정제도를 통해 갈등 발생 즉시 화해 조정 후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으로 진행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보호자의 협력도 중요하다. 최근 경미한 갈등이 학교폭력과 소송전 등 학부모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희 상담본부장은 “가해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억울해 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가해학생 보호자가 가해행위에 대해 지도와 대응을 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꼬집었다. 최 본부장은 “해외의 경우 학교폭력을 주도한 학생의 학부모에게 올바른 교육을 위한 경고와 재발 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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