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보호 4법’ 도입…그래도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기사승인 2023-11-27 18: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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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보호 4법’ 도입…그래도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교육언론창이 주관한 ‘2023 교권 보호와 학교 관리자의 역할’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조유정 기자

“문제 행동 학생에 대해 참고 또 참다 한계치까지 와서야 교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학교에 힘든 아이가 한두 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아왔지만, 거듭된 요청 끝에 부장 회의 안건으로 올릴 수 있었다. 교장‧교감, 상담교사, 부장, 옆 반 선생님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댔으나 돌아온 해결책은 ‘담임의 몫’이란 결론이었다.” (박순걸 경남 밀주초등학교 교감이 소개한 교권 침해 사례)

지난 9월15일 교권 보호 4법이 통과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교권 침해를 교사 개인이 감당하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 관계자들은 학교장 민원 처리 책임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학교 관리자 승진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교육언론창이 주관한 ‘2023 교권 보호와 학교 관리자의 역할’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교권 보호를 위한 목소리에도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학교장 승진 시스템 등이 좋은 교장을 만들지 못한다며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이초 사태로 촉발된 교권 문제가 사회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며 교권보호4법 등이 입법되는 과정이 있었지만, 법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학교 현장에서 교권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관리자들의 역할은 교권 침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며 “실제 교사들이 느낀 좌절감과 절망은 학교 구성원 외에서 오는 교권 침해보다 내부 문제가 더 큰 절망감을 준다. 학교 내부 관리자들이 교권 보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교권 보호 4법’ 도입…그래도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9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흔들고 있다. 사진=조유정 기자


‘홀로’ 감당하는 교사들


아직 교실에선 담임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가 존재한다. 박순걸 경남 밀주초등학교 교감은 “단일화된 민원창구가 없어서 학부모 갑질성 민원과 횡포가 교육활동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교사 개인에게 노출돼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여전히 학교에서는 교실의 문제는 교실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교직 문화가 있다”라며 “관리자의 존재와 역할 부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꼬집었다.

교사들은 교권 침해 속 학교 관리자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민정 의원과 교육언론창이 지난 11~17일 초‧중‧고등학교 등 교사 총 8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9.4%(432명)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관리자의 도움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라고 답했다.

그 결과 현장 교사들은 민원과 문제 학생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박 교감이 소개한 현장 교사 사례에 따르면, A 교사는 “학교는 교실 위기 상황에 지원 여력이 없어 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심리치료 지원 방법을 알려주며 위로만 해주고 갔다”라고 말했다. 즉각적인 지원 방법은 지원청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처리에만 예산과 지원이 몰려있는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B 교사도 “자신의 기분과 감정대로 행동해 친구들을 때리는 학생에게 ‘차라리 선생님을 때리라’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B 교사는 “다른 학생들을 때려 학교폭력으로 가면 가해자와 피해자 조사부터 사안 조사, 학부모 민원까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라며 “교권 침해만 참으면 홀로 해결할 수 있기에 버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호소했다.

‘교권 보호 4법’ 도입…그래도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교육언론창이 주관한 ‘2023 교권 보호와 학교 관리자의 역할’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조유정 기자


‘유니콘’ 된 좋은 교장 


적극 나서서 학생을 지도하고 학부모를 응대하며 피해 교원을 보호하는 교장은 ‘유니콘’이다. 박성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교장선생님이 분리 학생을 직접 상담하겠다는 미담을 간혹 듣지만 정말 극소수”라며 “‘유니콘 교장’은 현실에서 교사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교장을 찾기 어렵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 비판했다.

현장 교사들은 관리자가 교사의 편이길 바란다. 박 실장은 “교권 침해 탓에 사망한 사건들을 보면서, 학교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이 ‘나는 네 편’이란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현장에서는 악성 민원일수록 교사가 아닌 교장이 직접 민원인을 상대하고 빠른 상황 종결을 위해 민원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보다 학부모를 설득하는 교장을 원한다”라고 주장했다. 

현행 시스템이 좋은 교장을 양성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승호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장은 “현직 학교장 임용제도는 승진에 필요한 역량과 학교장으로 필요한 역량간 괴리가 있다”며 “학교장의 갈등관리와 의사소통 능력은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과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2023년 서울시 교감(장) 자격연수 운영 계획안에 따르면, 교감과 교장의 갈등관리, 의사소통 관련 비중은 5~8%뿐”이라며 “이마저도 집체형 강의식으로 실제 갈등관리 능력 향상하는 연수라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교장 자격증 없이도 교장이 될 수 있는 제도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교장 승진에 필요한 요소들은 학교장 직무역량과 상관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장이 되길 원하는 교사라면 별도의 과정을 이수하는 대신, 누구에게나 공모 지원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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