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학생 내보내라는 교육부, 내보낼 곳 없는 학교

기사승인 2023-12-05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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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학생 내보내라는 교육부, 내보낼 곳 없는 학교
쿠키뉴스 자료사진

학칙 개정이 이뤄지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 문제 행동 학생 분리는 사실상 불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생을 분리할 장소도 없고 분리 시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9월 교원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을 발표했다. 고시안에는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이 교육활동을 방해함으로써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학생을 분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 분리 장소와 시간, 학습지원 등 세부 규칙은 학칙으로 정하게 돼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생활규칙(학칙)을 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10월25~30일 전국 유·초·중·고 교사 54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칙 개정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잘 진행되고 있다’는 답변은 58.6%에 그쳤다. 절반에 가까운 교원들이 학칙 개정이 원활하지 않다고 답한 것이다. 가장 어려운 사항으로는 ‘문제행동 학생 분리, 민원 대응팀 구성 관련’(26.1%)을 가장 많이 응답했다.

학칙 개정은 이달 내 이뤄져야 하지만 많은 학교가 구체적인 분리 공간 등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총에 따르면, 문제 학생 분리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52.0%로 절반을 넘었다. 분리 공간을 마련한 학교는 교무실(47.8%)이나 특별실(24.3%)로 정했다고 답했다. 교무실 분리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구체적인 분리 장소가 언급되지 않아 대부분의 학교가 교무실, 교장실을 분리 장소로 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무실과 교장실 분리는 관대한 조치”라며 “학생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지도로 작용할지 의문”이라 지적했다.

문제 학생 내보내라는 교육부, 내보낼 곳 없는 학교
지난달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관한 학교 현장 실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 연합뉴스

현장 교사들은 고시안에 따른 분리 조치에도 ‘악성 민원’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초등교사 김모씨는 “학교에서 한창 생활규정 개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없고 아직 너무 관대하다”라며 “개정 이후에도 전과 같은 악성 민원 등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관계자도 “고시에 따른 분리 조치가 시행돼도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라며 “분리 조치로 발생하는 서류 작성 등 업무로 교사가 악성 민원에 다시 한번 노출될 우려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학부모의 악성 민원 우려로 실제 분리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았다. 교총 설문조사 결과, 과반수 교원(52.5%)이 분리 조치 근거가 마련됐지만 ‘보호자의 민원, 아동학대 문제 제기’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총 관계자는 “교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학부모의 교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도록 아동복지법 개정, 그리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민원을 강력히 처벌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교 내에서 자체적인 학칙 규정과 분리 공간 마련이 교원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교육부가 발표한 고시안에 인력과 예산에 대한 내용은 없다”라며 “결국 학교 안에서 자문책을 만들라는 것”이라 꼬집었다. 그는 “학교 현장에서 인력과 예산이 없는 상태로 해결하라고 하니 현장은 결국 교장실과 교무실 분리 등으로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 밝혔다. 이어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회복이 되고 발전해야 하는데 갈등의 골만 깊어져 교사 입장에서 좌절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 우려를 표했다.

교사들은 문제 행동 학생을 분리할 전용 공간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울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조)이 지난 10월19~20일까지 서울교사 38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2.2%가 일선 학교에 행동치료전문가 등을 배치해 문제 행동 학생을 담당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91.5%는 교육청에서 별도 예산을 배정해 일선 학교에 이들을 관리·지도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정성국 교총 회장은 “문제 행동 학생 분리와 학교 민원 대응을 위한 별도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교육청에선 이미 분리 학생에 대한 예산 지원에 나섰다. 경북교육청은 공모로 초중고 89개교를 선정해 ‘학생 분리 공간 정비 지원 사업’을 통해 2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분리된 학생의 학습 지원도 함께 이뤄진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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