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도 ‘소풍’ 같기를 [쿡리뷰]

기사승인 2024-01-24 14: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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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도 ‘소풍’ 같기를 [쿡리뷰]
영화 ‘소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80대 할머니 은심(나문희)은 요즘 자꾸 헛것이 보인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눠도 고개를 돌리면 아무것도 없다. 심란한 이때, 하나뿐인 아들은 사업에 문제가 생겨 돈 달라고 아우성이다. 마침 절친한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금순(김영옥)이 불쑥 찾아온다. 모든 것에 지친 은심은 금순과 고향인 남해로 훌쩍 떠나기로 한다.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은 두 80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소싯적 동대문에 가게를 얻어 서울에서 터를 잡은 은심. 고향을 등지고 살아온 지 수십 년인 그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런 은심을 움직이게 하는 건 막역지우 금순이다. 상견례 날에도 밭일을 하다 올 정도로 소탈한 금순이 웬일로 고운 한복차림을 하고 은심을 찾는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한 은심은 금순과 충동적으로 남해행 버스에 올라탄다.

다시 찾은 고향땅은 비슷한 듯 다르다. 정겨운 사람은 그대로다. 어린 시절 은심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는 쌍수 들고 그를 환영한다. 묘한 들뜸을 안고 이들 세 사람은 과거를 돌아본다. 그러는 중에도 현실은 지난하게 흘러간다. 은심 아들의 사업체는 존폐 기로에 놓이고 금순 아들은 속사정을 감추고 자꾸만 엇나간다. 정든 고향은 리조트 건립을 두고 주민 사이 갈등만 커져간다. 이 상황에서 자식들을 위하려면 살던 집을 내어줘야 하는데, “집이 없어지면 내가 없어지는 것 같다”는 마음에 두 사람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우리네 삶도 ‘소풍’ 같기를 [쿡리뷰]
‘소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년 세대의 현실적인 고민이 극 전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식 문제로 속을 썩고, 건강 문제로 골치가 아프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별천지 같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요양원에 보내지고… 이 가운데 두 노인은 집이 갖는 의미를 두고 골몰한다. 삶의 흔적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식들의 도생을 위해서는 집을 처분해줘야 하는 처지. 그 가운데 건강도 말썽이다. 두 주인공의 현실은 끄트머리에 놓인 인생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어느 시인 말처럼 ‘소풍 같던’ 세상살이를 소풍처럼 마치고 싶은 두 사람. 이들의 고민은 극 속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현실을 담담히 들여다보던 영화는 노년 세대가 으레 겪을 일들을 주 무대로 올리며 공감을 극대화한다. 볼수록 씁쓸한 감상이 피어오른다. 

삶이 늘 그렇듯 각자만의 사정과 애환 사이에서도 웃음은 있다. 보다 보면 실없는 웃음소리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침음하며 스크린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애써 눈물을 자아내려 하지 않는데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고생했어, 너는 충분히 했어”라는 은심이나, “그만하면 충분히 잘 살아왔어”라며 다독이는 금순을 볼 때면 묘한 위로와 함께 회한이 덮쳐온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울려 퍼지는 가수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는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는 치트키다. 

누구나 나이는 든다. 책임질 것들은 생겨나고, 마냥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피어난다. 몸이 말 같지 않아 서러운 순간 역시 온다. 영화는 이처럼 세파에 떠밀려 삶의 낭떠러지에 치달아도 함께할 친구 하나만 있다면 우리네 삶도 얼마든지 소풍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주인공 은심처럼 ‘센티’해서 더 매력적인 ‘소풍’이다. 다음 달 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능. 상영시간 113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