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통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공백기 인터뷰]

기사승인 2024-02-04 1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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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공백기 인터뷰]

사회에서는 일하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 상태 청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일자리라고 믿는다. 일이 소위 ‘놀고 있는’ 청년들을 다시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니트 상태 청년들이 매일 경험하는 어려움은 사회와 단절되었다는 소외감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자기 인식, 사회 시선으로부터 해방감을 경험한 니트 청년들은 ‘성공’, ‘안정된 삶’에 대한 정의를 바꿔가며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개인 문제에서 구조적 문제로 인식 변화

청년들은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에 머무른다. 사회와 단절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니트 상태에서 자기 비하와 혐오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시간을 많은 청년이 경험하고 있다는 인지가 전환의 시작이 된다. 타인과 경험을 공유하고, 니트 생활이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 억압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긴다.

“내가 겪는 힘듦이 전혀 특별하지 않고, 남들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인지할 수 있었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니트 상태의 어려움과 아픔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니트 상태가 된 게 온전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많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니트 청년 A씨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까운 커뮤니티

청년들은 니트 상태에서 취업을 위한 진로 컨설팅, 직업 훈련 등 여러 제도도 이용하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상담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은 커뮤니티를 찾았다. 접근성이 좋고 취업을 목표로 하지 않는,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셰어 하우스나 청년 공간,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그런 역할을 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까운 시간과 공간이 니트 청년들로 하여금 무언가 하고 싶게 만들었다.

“혼자서 힘을 내는 건 너무 어려워요. 도와주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상담은 제 어두운 부분까지 드러내야 해서 조금 힘든 면이 있어요. 커뮤니티는 ‘같이 와서 놀자, 즐기자’는 분위기예요.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과의 관계망 안에서 얘기하는 게 좋아요. 지금은 친구한테 상담받는 게 제일 좋아요.” 니트 청년 B씨

“집을 많이 옮겨 다녔어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혼자 서울에 와서 생활했어요. 일본에 교환학생 다녀오면서 아빠가 보증금으로 준 돈도 다 쓰고 돌아왔어요. 돈이 없으니까 고시원에 가서 생활했어요. 너무 답답하고 햇빛이 안 들어서 지루성 두피염에 걸리기도 했어요. 여성 전용 리빙텔에도 살다가 너무 비싸서 셰어하우스로 옮겼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랑 편하게 같이 활동도 하고 하니까 재밌게 보냈던 것 같아요. 니트 청년 C씨

나의 고통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공백기 인터뷰]

다양한 세대와의 연결


커뮤니티는 또래 집단 외의 다양한 세대와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청년들과 기성세대의 대립 구조가 한국 사회에 팽배하다. 그러나 니트 청년은 경쟁 관계 밖에 있는 기성세대를 편하게 여겼다. 이러한 관계 경험이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우울증이 와서 주민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했었거든요. 전문 상담사도 오고, 춤 테라피처럼 집단 상담 같은 활동이나 자조 모임 형태 프로그램들이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 참가자 중 제가 어린 편이다 보니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많이 챙겨주시고, 보살펴주시면서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기특하게 생각해 주셨어요. 비교 의식이 없는, 전적으로 지지받고 사랑받는 게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니트 청년 D씨

“집에서 나온 후 처음 했던 사회생활이 지역 은둔 고립 오픈 카톡방에서 추천받아 명상원에 갔던 거였어요. 8명 정도 있었는데 3명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부모님 세대였어요. 그곳에서 가족같이 챙겨주셨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다른 프로그램도 신청할 수 있었어요.” 니트 청년 E씨

지속적이고 유연한 연결

청년들은 커뮤니티 지지 경험을 통해 지속적이고 유연한 관계들을 만들었다. 한 번의 만남을 계기로 소모임이 지속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정보를 주고받고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 나갔다.

“주민 건강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참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모임을 만들어줬어요. 지자체에서 소모임 유지하는 비용을 대줬어요. 저희는 재료비 정도만 내면 되니까 부담이 적었어요. 소모임을 2년 정도 참여하다 보니까 관계가 이어졌어요. 두 번째 프로그램 참여하는 날이었는데 프로그램 관계자분이 제 이름을 불러주시더라고요. 처음으로 사회에서 따뜻함을 느꼈어요.” 니트 청년 D씨

새해에 청년 문제와 관련된 사업 예산 편성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청년들이 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계기는 거창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알아차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따뜻함. 과연 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위 기고글은 2023 청년정책의제 연구 2호-청년정책의 미끄러짐과 회복 ‘사회적 지지가 니트 청년의 긍정적 전환에 미치는 영향’을 발췌·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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