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교사’에 박한 순직 심사…“자살도 순직 사유돼야”

기사승인 2024-03-08 06: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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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교사’에 박한 순직 심사…“자살도 순직 사유돼야”
고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식이 열린 지난해 9월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시민추모공간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 공문 접수 530건. 공문 생산 164건. 출장 33번. 복수학급 담임교사로 2개 학년 운영. 전담 교사 없이 주 29시간 수업. 현장체험학습 활동. 학습 준비물 및 교재 교구 준비. 학교폭력 전담 기구. 학교폭력 예방 및 사안 처리.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교육. 학생 자치활동. 에너지 절약 및 경제 교육. 인성인권교육. 자살 예방 교육, 이웃돕기. 통일 및 독도 교육. 어린이 보호 및 안전 교육. 정보 업무 전반 및 컴퓨터 관리 등.

전북 군산시 무녀도초 교사 A씨가 출근한 82일간 맡은 업무 중 일부다. 업무 과중을 토로하던 A씨는 지난해 9월1일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해양경찰 수사에서 A씨는 업무 과다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사혁신처에선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 교사들 사이에서 순직 인정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 서이초 교사가 지난달 27일 순직을 인정받은 것이 전환점이었다. 고 서이초 교사도 생전 학부모 민원과 문제 학생 지도로 고충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는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5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2024 교권 11대 정책과제’ 발표에서 교원 순직 인정 제도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교총은 “교원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는 까다롭고 소극적인 순직 인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교사들은 유독 순직을 인정이 받기 어려운 직업이 교사라고 토로했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유난히 교육 공무원의 순직이 제한적이고 소극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원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까다로운 순직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윤미숙 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교사 순직을 인정받으려면 유가족이 모든 입증을 해야 한다”라며 “전문가가 아닌 유가족들이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다시 상처받는 등 시스템에 문제가있다”라고 꼬집었다.

실제 교사 등 교육 공무원의 순직 인정 비율은 극히 낮은 편이다. 지난해 9월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이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17개 시·도교육청의 교원 사망 현황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해당 기간 극단적 선택을 한 교원 중 순직을 신청한 17건 중 3건(17.6%)만 순직 인정을 받았다. 반면 일반직공무원은 순직 신청 27건 중 7건(26.9%)이 순직 인정을 받았다. 소방공무원은 19건 순직 신청 중 13건(68.4%), 경찰공무원은 10건 순직 신청 중 6건(60.0%)이 순직으로 인정받았다.

유독 ‘교사’에 박한 순직 심사…“자살도 순직 사유돼야”
고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식이 열린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교실에 화환과 추모의 메시지가 붙어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교사들은 유가족이 모든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 것 역시 현행 순직 심사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가족을 잃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유가족들이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상처받기 때문이다. 김광일 교사유가족협의회 정책국장은 “유가족이 자료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라며 “서이초 사건도 경찰에서 자료를 5분의 1도 제공받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특히 자살은 순직으로 인정받기 더욱 어렵다”라며 “교사가 생전 정신적으로 힘들었어도 자살과 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고 신목초 교사의 작은 아버지 B씨도 “순직 처리를 위해 5개월 간 변호사와 학교, 여러 교권 단체를 만나며 자료를 수집했으나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교원 단체와 유가족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을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노력하다 사망에 이른 고인은 공무 수행 중 사망한 것이 명확하다”라며 “순직이 인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고 신목초 교사가 담당한 학급에선 학생들이 의자를 들고 싸우거나 수업 중 무단으로 교실을 나갔다. 힘이 약한 친구에게 노예 계약서를 쓰게 한 일도 있었다. B씨는 “생활지도를 위해 노력했으나 지도가 어려워 교사로서 무능력감과 자존감 저하 등을 겪었다”라며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다 휴직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5년 차 이하 교원의 자살 비율은 전체 교원 사망의 30%에 달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좋은교사운동이 2020~2023년 상반기 15개 시도교육청별(인천 제외) 교원 사망 현황을 분석한 결과, 5년 차 이내 자살 교원 비율은 27.6%로 조사됐다. 특히 제주 100%, 대전 66%, 충남 60%, 부산 50% 등은 초임 교원의 자살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교원 순직 심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20일 설명자료를 통해 “순직 인정 과정에 교사 출신 관계자 참여를 통해 교원 직무와 질병, 사망 관련성 정책연구를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사혁신처, 공무원연금공단 등 순직 인정 기관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라며 “시도교육청별 순직 심의 담당자를 지정해 유족 부담 완화를 위해 자료 준비를 지원 중”이라고 덧붙였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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