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에 치료 힘든 HIV…사회적 제약도 장애로 봐야”

김태형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인터뷰

기사승인 2024-04-25 14: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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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에 치료 힘든 HIV…사회적 제약도 장애로 봐야”
김태형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순천향대서울병원

신체적 손상이 없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볼 수 있을까. 이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물음표를 달고 던져진 논제였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도 물음표에 갇힌 대표적 대상자 중 하나다. 경직된 사고의 틈이 열린 건 장애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고 나서부터다.

10여년 전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을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손상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했다. 장애의 개념을 특정 질환이나 신체적 손상에 국한하지 않고 정신적, 심리적 영향으로 초래되는 사회생활의 제약까지 아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미국, 일본, 홍콩 등은 법적으로 장애를 인정하는 범위를 넓혔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1년 장애인복지법 하위법령을 개정하고 간신증후군, 정맥류출혈,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백반증, 중증복시, 완전요실금, 뚜렛증후군 등 정신·내과 질환을 장애 범주에 넣었다. 그러나 여전히 포괄적 의미의 장애가 아닌, 질환에 한정된 장애 기준이 한계로 지적된다. 법 테두리에서 밀려난 HIV 감염인들은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3일 쿠키뉴스와 마주한 김태형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대한에이즈학회 기획이사)는 “내과적 질환을 장애로 판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성질환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애가 생기지만 이를 정량화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장애로 인정받아야 하는 내과적 질환이 분명히 있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이면서,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당한다면 장애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애로 인정된 내과질환인 만성신부전증을 예로 들었다. 현행법상 3개월 이상 혈액·복막투석을 받은 만성신부전증은 장애 2급으로 판정한다. 

김 교수는 “만성신부전증 환자 중에서도 투석만 잘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가 많지만 잦은 투석으로 인해 일자리를 갖거나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장애를 인정해 준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HIV 감염인들이 호소하는 내용도 이와 비슷하다”며 “HIV 감염인도 약만 잘 먹으면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HIV 감염에 대한 편견 등으로 인해 인간관계, 사회생활에서 차별과 제약을 겪는다”고 언급했다.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인 점도 장애로 봐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은 관리를 잘해도 나이가 들수록 심혈관질환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HIV 환자도 마찬가지다. 치료 기술이 발전해 HIV 생존율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고령층 환자의 비율이 늘고 있다.

김 교수는 “HIV 감염인들 가운데 합병증이 생겨 장기 요양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문제는 HIV 감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병원에서도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차별로 인해 진료가 제한되면 결국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심각한 질환들을 안고 살아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런 부분을 ‘약자’로 보고 장애 판정 시 반영해줘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그는 HIV 감염인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진단과 치료기관을 통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HIV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양성인 경우 병원에 방문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감염인들은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병원 가길 망설이고, 숨은 감염자가 되거나 치료를 늦게 시작하게 된다”고 했다. 한 기관에서 진단과 치료가 연계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HIV는 치료 환경이 발전함에 따라 약으로 충분히 관리가 되고 감염 위험도 크지 않다”며 “전 세계적으로 예방 관리가 잘 이뤄져 감염률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로, 전문가들은 10~20년 후면 HIV가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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