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탁기 못 두는 아파트…“시공사는 정 붙이고 살래요”

기사승인 2024-06-25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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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세탁기 못 두는 아파트…“시공사는 정 붙이고 살래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 최초 아파트인 ‘동일 센터시아’ 다용도실 에어컨 실외기와 보일러, 하향식 피난구가 함께 위치해 세탁기를 둘 공간이 없는 모습. 독자제공


#. 오는 7월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사전점검을 진행한 A(30대)씨는 세탁기를 설치할 다용도실을 본 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용도실에는 세탁기를 위한 수전이 설치돼 있지만 에어컨 실외기와 보일러, 하향식 피난구가 위치해 세탁기를 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25일 수분양자 등에 따르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 최초 아파트인 ‘동일 센타시아’ 수분양자들은 설계 문제와 아파트 하자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세탁기를 둘 수 없는 다용도실 공간부터 실외기와 보일러가 함께 놓여 화재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15일 2차 사전점검을 진행한 동일 센타시아를 현장 방문한 결과, 다수 세대의 다용도실에 에어컨 실외기와 보일러, 하향식 피난구가 함께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아파트 구조상 다용도실은 세탁실로 활용 되지만 실외기와 보일러, 피난구로 인해 세탁기를 설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세대의 경우, 유료 옵션으로 8kg 세탁기(주방 설치)를 선택해 그나마 집안에서 빨래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2~3인용 빨래는 매번 빨래방에 가서 세탁해야 하는 처지다.

A씨는 “아파트 매매가가 수억 원인데 세탁기를 못 두는 집이 어디 있느냐”라며 “일부 세대의 경우 옵션으로 8kg 세탁기를 선택했는데 (용량이 적어) 세탁기가 있어도 일반 빨래는 못 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세대는) 세탁기를 아예 둘 수 없는 상황인데 시공사에서는 답을 주지 않고 있다”라며 “현장 소장은 ‘이불 빨래는 빨래방 가서 하라’고 말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단독] 세탁기 못 두는 아파트…“시공사는 정 붙이고 살래요”
남구로역 동일센타시아 공식 홈페이지 E-모델하우스 42㎡B2 타입 침실과 다용도실 모습. 남구로역 동일센타시아 공식홈페이지 캡처.

실외기실 과열로 화재 우려

더 큰 문제는 화재 위험성이다. 에어컨 실외기와 보일러가 맞닿아 있어 과열 우려가 있다. 하향식 피난구 위치도 위험성을 더한다. 수분양자 B씨는 “에어컨을 켠 상태로 온수를 틀면 내부 온도는 금방 70~80℃까지 금방 올라갈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C씨는 “보일러랑 실외기가 함께 있어서 화재 위험이 커 보인다”라며 “불이 나도 대피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실제 실외기에서 발생한 열로 화재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2020년 10월 울산 남구 달동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에서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발생한 열 때문에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2021년 7월에는 수원 장안구 아파트 9층 다용도실 실외기가 과열돼 불이 났고, 같은 해 8월 전북 군산 아파트의 10층 베란다 실외기에서 과열로 인한 화재로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전문가 역시 실외기와 보일러가 함께 설치될 경우 화재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만 40~60℃ 된다”라며 “에어컨에서도 열기가 나와 상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향식 피난구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에 대해 “대피는 화재 시 안전한 곳이어야 하는데 더 위험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도 “아파트 설계 실무를 많이 하는 입장에서 보통 보일러 공간에 세탁기는 많이 들어간다. 실외기는 대개 남쪽에, 보일러는 북쪽에 위치해 같이 위치하긴 힘들다”라고 밝혔다. 이어 “다용도실과 피난 공간 기능을 명확히 공간 목적에 따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공사·구청 ‘설계’ 탓…수분양자 분통

동일 센타시아의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2차 사전점검 끝에야 드러났다. 최초 계약서상 동일 센타시아는 지난 4월 입주 예정이었으나 공사 지연으로 인해 6월로 입주가 한 차례 연기됐다. 6월 입주를 앞두고 5월 사전점검에서 미시공 등의 문제로 지난 14~16일 2차 사전점검을 진행했다. 이 같은 문제는 2차 사전점검에서야 불거졌다. 

수분양자들은 시공사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다수 수분양자에 따르면 시공사는 수분양자의 다용도실 문제제기에 별다른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수분양자 D씨는 “시공사에 문제를 제기해도 답을 안 해주고 정붙이고 살라는 말만 한다”고 주장했다. 사전점검 당시 D씨가 현장 관계자를 향해 ‘가족이라면 이런 집에서 살게 할 수 있겠냐’라고 묻자, 현장 관계자는 ‘저는 안 살아요. 여기’라고 말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시공사와 구청은 해당 문제에 대해 ‘설계’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구청) 승인 도면대로 시공했다”라며 “(세탁기를 두려면) 전체적인 구조를 다 바꿔야 하는데 사업 승인도 안나고 착공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구로 구청 관계자도 “설계 도면하고 똑같이 설계됐다”라면서 “설계상 실수이기도 하지만 조합에서 소형 평형을 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시공사 D 건설은 지난 20일 준공 승인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승인을 받지 못했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준공 서류 준비 미흡과 내외부 공사가 덜돼 준공 승인이 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7월로 연기된 수분양자들의 입주 시기는 또 다시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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