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듯 익숙하고 재밌는 ‘던전 앤 드래곤’ [쿡리뷰]

기사승인 2023-03-28 06: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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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듯 익숙하고 재밌는 ‘던전 앤 드래곤’ [쿡리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누구나 인생에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한때 명예로운 기사였던 에드긴(크리스 파인)에겐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특히 더 절실하다. 사악한 마법사에게 아내를 잃고 곧이어 딸마저 타향살이를 하게 돼서다. 무너진 가정을 등지고 도적으로 전락한 에드긴은 부활의 서판으로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마법 도시 네버윈터로 향한다. 에드긴의 모험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하나씩 모여든다. 에드긴 일행은 원하는 바를 무사히 이룰 수 있을까.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감독 조나단 골드스타인·존 프란시스 데일리)는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은 재미를 가득 담은 작품이다. 롤 플레잉 게임(RPG) 원조격인 ‘던전 앤 드래곤’ 세계관에 기틀을 두고 바드, 바바리안, 팔라딘, 소서러, 드루이드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배치했다. 판타지 RPG 게임을 자주 해본 이들이라면 반가울 캐릭터와 풍경이 도처에 있다. 동료를 차례로 영입해 모험을 떠나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 역시 친근하다. 이야기 구조는 판타지에 생소할 이들도 익숙하게 느낄 만하게 구성해 익숙함을 더한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쉴 새 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다양한 문화권에 고루 통할 만한 재미 요소가 가득하다. 어딘가 어설픈 에드긴과 한 팀을 이룬 강인한 바바리안 홀가(미셸 로드리게즈), 어수룩한 소서러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변신에 능한 드루이드 도릭(소피아 릴리스)은 유능하면서도 허술하다. 이들이 곳곳에서 펼치는 상황극이 쏠쏠한 재미를 준다. 고지식한 팔라딘 젠크(레게 장 페이지)와 함께하는 장면 역시 웃음이 끊임없이 나온다. 완벽하지 않던 이들이 팀으로 의기투합해 점차 단단해지는 과정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악역으로 변신한 휴 그랜트의 능글맞은 모습도 새롭다. 캐릭터들의 생생한 매력은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를 이끄는 큰 동력이다.

낯선 듯 익숙하고 재밌는 ‘던전 앤 드래곤’ [쿡리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판타지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한 화면은 상영시간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마법사들의 마법 대결부터 자유자재로 변신해 적들과 싸우는 드루이드 도릭의 모습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곰과 용을 변형한 새로운 괴수들과 마법 세계관에 어울리는 동물들 역시 보는 맛을 더한다. 마법을 무력화하는 분리의 투구, 망자를 되살리는 부활의 서판 등 판타지에 걸맞은 도구들도 다양하게 나온다. ‘해리포터’ 시리즈, ‘신비한 동물사전’과 ‘반지의 제왕’ 등 판타지 영화를 좋아한다면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역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영화가 가진 재미도 좋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이야기 구조가 단순 명료하다.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복잡하지 않은 전개 위에 여러 캐릭터가 화려하게 뛰어놀고, 몸싸움부터 마법 전투까지 다양한 액션이 어우러져 알찬 재미를 선사한다. 긴장감을 줬다 풀었다 하는 솜씨도 일품이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 시리즈, ‘스파이더맨: 홈커밍’ 등에 참여한 제작진의 연출 역량이 엿보인다. 어수룩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크리스 파인의 연기와 미셸 로드리게즈의 차진 액션, 고지식한 모습을 능청맞게 살리는 레게 장 페이지의 활약이 볼 만하다. 집중하려 하지 않아도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속 판타지 세계에 어느 순간 빠져든다. 

“실패해도 멈추면 안 돼. 멈추면 실패하는 거니까.” “난 실패의 챔피언이야. 그러니까 난 계획을 짤 거야.” 난관에 부딪혀도 결연하게 말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웃음 이상의 잔상이 마음에 남는다. 예상 못한 장치에 깜짝깜짝 놀라는 순간도 많다.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다 보면 134분이 금세 지나간다. 오랜만에 볼 만한 판타지 영화가 나왔다. 제목이 주는 낯섦을 극복하면 확실한 재미를 만날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오는 29일 개봉.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