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불꽃, 아이유의 ‘드림’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5-04 06: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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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지 않는 불꽃, 아이유의 ‘드림’ [쿠키인터뷰]
가수 겸 배우 아이유. EDAM엔터테인먼트

가수 겸 배우 아이유는 유독 ‘드림’과 인연이 깊다. 연기 데뷔작 KBS2 ‘드림하이’를 거쳐 만난 첫 스크린 데뷔작은 영화 ‘드림’(감독 이병헌). 14년 만에 다시 만난 ‘드림’에 그는 “얼떨떨하다”는 소감을 내놨다. ‘드림’은 그에게 새로운 처음을 선물한 작품이다. 최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아이유는 “준비한 것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돌아봤다. 

아이유는 드라마로 이미 잔뼈가 굵다. ‘드림하이’를 시작으로 KBS2 ‘프로듀사’와 SBS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tvN ‘나의 아저씨’·‘호텔 델루나’ 등 내로라하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아 활약했다. 그가 ‘드림’에서 연기한 이소민은 전작들과 다르다. 세파에 찌든 기색이 역력한 이 청춘은 독특하다. 냉소적으로 열정을 갈아 넣고, 잔뜩 꾸며낸 미소와 함께 악착같이 일한다. 학자금 때문에 인생이 정체된 인생이라 자조하면서도 뚝심 있게 일을 끌고 간다. 아이유는 이소민의 이런 모습이 좋았단다. “울 일 많은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생각이 깊어졌다”던 그는 “사연 없는 단순한 캐릭터를 하고 싶던 차에 (이)소민이를 만났다”고 했다.

식지 않는 불꽃, 아이유의 ‘드림’ [쿠키인터뷰]
영화 ‘드림’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드림’은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란 말 대신 ‘(상대를) 걸고넘어져라’ 한다. 앞서가는 이가 있으면 당연히 뒤처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축구는 앞서가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받쳐주며 하는 것’이란 위로를 건넨다. 아이유를 매료시킨 대사들이다. 따뜻한 메시지에 이끌렸지만 이소민을 연기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드림’은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촬영 시기가 겹쳤다.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살리기에 골몰해야 했다. 아이유는 당시를 “고민 많던 시간”으로 추억했다.

“소민이는 누구보다 열정적이면서 열정 없는 척해요. 일종의 자기 방어죠. ‘난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해서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서사를 상상하며 캐릭터를 구체화했어요. 외형은 촬영장에서 보던 감독님 패션을 그대로 따왔어요. 찌든 느낌을 표현하려 했죠. 어렵던 건 대사였어요. 제가 준비한 것보다 더 속도감 있게 말해야 했거든요. 혼란스러웠어요. 말하지 않을 때도 부산스럽게 잔동작을 하다 보니 소품과 동선을 계속 신경 썼어요. 준비한 연기에 무작정 기대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감독님 디렉팅 덕에 적응했어요.”

아이유는 준비하는 삶에 익숙하다. 본업인 가수는 정해진 동선과 트랙리스트를 기억하고 세션·댄서와 합을 맞춰 움직여야 한다. ‘드림’ 현장은 달랐다. 호흡은 더욱더 빨라야 했고, 예상 범주를 벗어나는 상황이 마구 발생했다. 이병헌 감독이 대사를 2.5배 빠르게 해달라고 주문할 땐 눈앞이 캄캄했단다. 순발력과 지구력, 재치를 요하던 현장에서 그는 새로운 생존비법을 터득했다. 잡초처럼 적응해버리고 마는 끈기는 이소민과 꼭 닮았다. 

식지 않는 불꽃, 아이유의 ‘드림’ [쿠키인터뷰]
‘드림’ 비하인드 스틸.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돌이켜보면 데뷔 이후 늘 불붙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가수도, 드라마로 시작한 연기자 생활 역시 그랬어요.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커요. 대중이 저를 점점 좋아하는 게 느껴질 때면 무엇이든 적응하고 말겠다는 마음이 샘솟았죠. 이전에 비하면 영화는 운 좋게 출발선을 끊었어요. 첫 작품부터 이병헌 감독님을 만났고 그다음은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이었으니까요. 함께 호흡한 선배 배우들도 모두 대단한 분들이잖아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연기자로서 책임감이 더욱더 커졌어요.”

그는 가수, 배우 양쪽 삶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다. 아이유는 “가수로 유명해진 덕에 좋은 기회를 얻어왔다”며 “연기자로서 ‘가수 아이유’는 넘어야 할 벽이 아닌 분발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활동명을 아이유로 통일한 그는 “일과 개인의 삶을 분리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데뷔 후 매일 일기를 쓰는 건 그래서다. “하루를 총평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저와 삶을 돌아볼 수 있어요.” 진중하게 말을 잇던 아이유는 “30대는 목표 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얼마 전 일기들을 다시 보며 느낀 게 있어요. 지금까지 주변 분들이 제가 설정한 방향을 반대한 적이 없더라고요. 덕분에 지금껏 한 개인으로서 설 수 있던 것 같아요. 팬분들도 제가 그동안 열심히 해서 계속 기회를 주는 게 아닐까요? 20대를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하거든요. 30대에는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편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음악과 연기, 메시지들을 전하려 해요. 흘러가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며, 30대 아이유도 식지 않는 불꽃처럼 일을 사랑할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