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혼자 게임해요”…아빠 먹먹하게 한 아들의 글

기사승인 2023-06-18 18: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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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혼자 게임해요”…아빠 먹먹하게 한 아들의 글
40세 직장인 김지호(가명) 씨의 아들이 학교에서 써내려간 ‘우리 가족의 생활 모습’. 김 씨는 아들의 글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한다.   사진=김지호(가명) 씨

최근 40세 직장인 김지호(가명) 씨는 퇴근 후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쓴 글을 우연히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 글은 학교에서 작성한 것으로 ‘우리 가족의 생활 모습’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다섯 가지 질문에 따라붙은 아들의 답이 보였다.  

‘쉬는 날, 우리 가족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라는 물음에 아들은 ‘아빠, 엄마 모두 일을 하고 형은 태권도 시범단 훈련을 가며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한다’라고 했다. ‘가족이 저녁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각자) 할 일’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가족이 함께 펜션 수영장에서 물놀이한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 넣기도 했다.  

김 씨는 주중 직장생활에 이어 주말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루도 쉼 없는 생활이지만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다지며 지낸다. 김 씨의 부인도 마찬가지다. 주중에는 소규모 사업을 하고 주말에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일로 집을 나선다. 

김 씨는 “일을 많이 하는 게 가족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짬이 나면 잠을 청하기 바빴다”며 “아이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크지만, 아들이 느끼는 우리 가족에 대한 글을 보고나니 마음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관심을 갖고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솔직히 어색한 점도 있고 갑자기 어떻게 다가서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라고 덧붙였다.

“자녀 이야기 귀 기울이며 대화 확장… 부모 표정·분위기 영향 커”

자녀와의 소통에서 핵심은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김은정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자녀와 마주하는 시간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꾸준하게 갖는 게 좋다”며 “가장 중요한 게 적극적 경청이다”라고 짚었다. 부모가 주도적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서로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라며 “아이가 조금씩 말을 건네면 적극적으로 그 말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확장해주는 게 좋다”고 전했다. 또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바탕에 부모의 역할과 관계가 자리한다”라면서 “부모와의 소통은 아이의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부모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밖에서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 얼마나 지쳐있는지 알기 어렵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과 기분을 살핀다. 배승민 가천대학교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는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이 있다”며 “부모가 집으로 돌아와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과제를 봐주고, 목욕 등을 해주다보면 어느새 표정이 굳고 말도 빨라지고 짜증을 내는 상황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집에 돌아왔을 때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기도 한다”면서 “아빠나 엄마가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잘못 인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더불어 아이를 대할 때 어떤 표정과 말투를 갖는지 거울을 보며 부모 스스로 살피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30분 보드게임’ 또는 ‘식사 후 산책’ 등 비교적 부담 없는, 가족 여건에 맞는 문화를 만들어갈 것도 권했다. 

배 교수는 “아이들 중에는 ‘아빠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며 장난 쳤던 일을 즐거웠던 기억으로 꼽는 경우가 있다”며 “분리수거 과정과 당시 분위기를 아빠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일로 삼는 것이다. 뭔가 특별한 것을 해주려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생활이 이뤄지면 된다”고 피력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용돈으로 보상하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는 당부도 나왔다. 이는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상호작용이며, 자칫 자녀와의 갈등을 부를 수 있다고 한다. 

배 교수는 “부모는 모를 수 있지만 아이도 가정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네가 잘 해줘서 우리 가족이 잘 지낼 수 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잘 해내고 있는 네가 자랑스럽다’ 등의 격려의 말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이의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독하고 건강한 부부 사이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