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 대신 ‘귀공자’ 윤주라 불리고 싶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7-06 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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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 대신 ‘귀공자’ 윤주라 불리고 싶죠” [쿠키인터뷰]
배우 고아라. 스튜디오앤뉴 

2년 전 배우 고아라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어 생각만 많았다. 터널 속을 걷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다름 아닌 박훈정 감독. 뚜렷한 설명 없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는 간결한 말에 고아라는 냅다 감독 사무실로 달려갔다. 처음으로 대면하던 순간이 지금도 선하단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다. “그야말로 감개무량합니다. 하하.”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고아라는 쾌활하게 웃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귀공자’는 고아라가 첫 도전한 누아르 영화다. 극 중 아리송한 인물 윤주 역을 연기했다. 윤주는 등장하는 내내 아군인 듯 적인 듯 모호하다. 마르코(강태주)를 처음 만났을 땐 상냥하고 발랄하면서도 싸늘한 모습을 보여준다. 필리핀을 거쳐 한국서 재회했을 때도 그의 의뭉스러움은 여전하다. 고아라는 감독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윤주의 모든 게 궁금했어요. 윤주의 이야기를 감독님께 자주 여쭤봤던 기억이 나요. 어려웠거든요. 이름은 왜 윤주인지, 성은 무엇인지, 어쩌다 이런 직업을 가진 건지, 어떤 훈련을 거쳤는지… 설명을 들을수록 윤주가 보였어요. 윤주는 각본에서부터 멋졌어요. 뛰어난 능력치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주면 어떨까 싶었죠.”

“고아라 대신 ‘귀공자’ 윤주라 불리고 싶죠” [쿠키인터뷰]
영화 ‘귀공자’ 스틸컷. NEW 

동경하던 박훈정 감독과의 작업은 고아라에게 꿈만 같았다. 각본을 받고 뛸 듯이 기뻤다던 그는 “또 다른 내 모습을 감독이 알아본 것 같아 감사했다”며 눈을 반짝였다. “제 이미지가 박훈정 감독님의 기존 영화들과 잘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런 제가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는 것부터가 반전 아닐까요? 이런 역을 맡을 줄은 저조차도 상상 못 했어요. 감독님 작품이면 한 컷만 나와도, 그냥 지나가는 역할이어도 좋았을 텐데….” 명랑하게 말하는 모습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시나리오 속 윤주의 멋에 흠뻑 빠진 그는 차량 추격(카 체이싱)부터 총기 액션까지 긴 시간 연습했다. 과거 영화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 촬영 당시 와이어를 마다하고 직접 장대높이뛰기에 도전했던 그다. 이번에도 열정 가득하게 훈련에 임했다. 쉬는 날이면 공터를 찾아 운전 연습에 매진했다. 침대 머리맡에 연습용 총을 두고 잠든 날도 여럿이다. 힘들었을 법도 한데 “즐거웠다”며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이 다부져 보였다.

고아라는 ‘귀공자’가 전환점이길 바랐다. 7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그는 2016년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에서 짧게 등장하고 2020년 KBS2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에 출연한 이후 수 년 동안 활동을 멈췄다. 공백기를 가진 이유를 묻자 “생각만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시간이 많이 흘렀더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감독 조지 밀러)를 위해 반삭도 불사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좋은 예다. 고아라는 “외모에 갇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것까지 국한 지으면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겠냐”며 “작품만 좋다면 외적인 걸 포기하고서라도 ‘올 인’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귀공자’로 색다른 장르 맛을 본 그는 “더 많은 대본을 원한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고아라 대신 ‘귀공자’ 윤주라 불리고 싶죠” [쿠키인터뷰]
고아라. 스튜디오앤뉴 

고아라의 필모그래피는 KBS2 ‘반올림’ 옥림과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나정으로 대표된다. 그는 “언제나 작품 속 캐릭터로 보이길 꿈꾼다”고 말했다. ‘귀공자’ 속 윤주 역시 그렇다. 그는 감독이 원하는 윤주를 그리기 위해  각고 노력을 기울였다. 고아라는 옥림, 나정 그리고 윤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는 “아직 할 것도, 살날도 많이 남았으니 더 열심히 살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반올림’ 시절에 이런 말을 했어요. 흰 도화지 같은 배우가 되겠다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데뷔한 지 20년이나 흘렀어도 아직 못 해본 장르와 역할이 많더라고요. 이 재밌고 감사한 직업을 더욱 즐기고 싶어요. 차기작도 신중히 골라보려 해요. 올해가 마침 ‘응사’ 10주년이더라고요. 그때와 지금처럼, 대중과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