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취소되고 수술 연기…“환자들, 의료공백 볼모됐다”

중증질환연합회, 환자 피해사례 소개

기사승인 2024-03-11 20: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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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취소되고 수술 연기…“환자들, 의료공백 볼모됐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정부와 의료계가 힘겨루기를 하며 중증환자들이 치료받을 기회와 시간을 짓밟고 있습니다. 막막함과 황당함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식도암 4기 환자의 가족 A씨)

식도암·폐암·췌장암·다발골수종·중증아토피 등 6가지의 중증질환 환자단체들이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수술이 연기되거나 항암 치료, 입원이 취소된 사례를 공개했다. 식도암 4기임에도 치료를 거부당한 A씨 부친의 사례 등 이날 연합회가 공개한 피해 사례는 12건에 달한다.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22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B씨(66)는 1년4개월의 항암치료 진행 후 종양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어 수술 소견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수술 날짜가 결정돼 오는 18일 수술 예정이었으나,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진료 축소로 수술이 미뤄졌다. 수술 전 예정된 방사선 치료도 취소됐다.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첫 항암이 예정됐던 식도암 환자 C씨(71) 역시 이번 사태로 지난 3일 원래 일정보다 열흘 가까이 늦게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첫 항암 치료 이후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보니 췌장까지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연합회는 “C씨의 보호자는 항암 일정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전이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라며 “순식간에 췌장으로 암이 전이된 사실을 환자는 아직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작년 암 진단을 받은 D씨(76)는 서울의 한 병원 입원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 병원에 전화해 대기 순번을 확인하고 있지만 전혀 줄지 않고 있어 마음을 졸이고 있다. 연합회는 “D씨는 이 사태가 무섭고 겁이 나지만 사태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며 “항암이 미뤄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암 진단을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있던 E씨(70)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벌어진 지난달 20일 병원으로부터 퇴원을 종용 받았다. 요양병원으로 전원된 E씨는 전원 다음날 사망했다. F씨(60)는 9차에서 10차로 넘어가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입원 중지 연락을 받았다. F씨는 급하게 외래 진료로 전환했지만, 한 달이 더 지연돼 그 사이 등 통증이 심해지고 간수치가 올라갔다.

연합회는 “가장 보호받아야 할 중증환자들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상황에서 협상의 도구로 전락해 볼모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연합회는 “이제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자포자기를 하게 된다. 치료를 받을 의지마저 사라져가고 있다”며 “의사의 소명을 저버리고 의료현장을 이탈하는 것을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된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8일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 수는 총 1105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접수된 피해신고서는 총 442건이다. 수술 지연이 31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진료 취소 67건, 진료 거절 40건, 입원 지연 18건 등이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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