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의료계 ‘중계기관’ 반발 여전

기사승인 2024-04-04 06: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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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의료계 ‘중계기관’ 반발 여전
금융위원회

오는 10월부터 종이 서류 없이 실손의료보험을 청구할 수 있는 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된다. 하지만 의료계에서 보험개발원이 전송대행기관으로 지정된 것을 두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부터 복지부, 금감원, 의약단체, 손·생보협회, 보험개발원 등과 함께 TF를 구성해 오는 10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도입을 목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하위규정 개정과 전산시스템 구축, 요양기관 배포를 위한 실무 워킹그룹도 운영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도입되면 소비자가 의료기관에 진료비 내역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로 전송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요청받은 의료기관이 전송대행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정보를 전송하는 식이다.

현재 소비자가 실손보험을 청구하려면 보험금 청구 서류를 종이로 발급받아 우편이나 팩스, 이메일,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절차가 복잡해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한 금액이 연간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2022년 보험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58.3%의 소비자가 보험금 청구・지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로 ‘편리하고 다양한 보험금 신청・접수 방법’을 꼽았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논의된 끝에 지난해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이후 14년 만이었다. 개정안에 따라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오는 10월25일부터 병상 30개 이상 병원에서 시행된다. 일반 의원, 약국은 내년 10월25일부터 이용할 수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5일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마쳤다. 같은달 29일 정부에서 발표한 ‘2024년 정부혁신 종합계획’에도 해당 내용이 포함됐다.

보험업계에서도 제도 도입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은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위와 보건복지부, 유관기관이 TF를 구성해 실손보험 청구 전산시스템이 오는 10월25일 정상적으로 개시될 수 있도록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논의가 원만하게 진행 중이고, 조만간 실손보험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앞으로 여러 변수 생길 수 있겠지만 당국과 협의해서 제도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의료계 ‘중계기관’ 반발 여전
지난해 9월 국회 앞에서 열린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의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 반대 기자회견. 사진=김은빈 기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오랫동안 반대해 온 의료계는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전송대행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을 지정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보험개발원을 거쳐가는 환자들의 의료 정보가 보험사에 유리하게 이용될 수 있고, 해킹 등으로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서울시의사회가 실손보험 청구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 선정을 두고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보험개발원은 사실상 보험사들이 만든 곳이라 환자 개인 정보를 맡기는 건 위험하다”라며 “보험사들이 환자들의 의료 정보를 가져가서 보험금 지급 거절 근거로 들거나 보험료를 차등 인상하거나 보험 가입·갱신을 거절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는 지금도 소비자에게 고액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해서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보험금을 돌려주겠다고 얘기하는 건 모순”이라며 “환자들의 의료 정보는 해킹 등으로 유출되면 굉장히 위험한 민감 정보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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