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32)

루벤스의 두 번째 부인 헬렌 푸르망

입력 2024-04-08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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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32)
아틀리에 페테르 파울 루벤스?, 반 헬렌 푸르망의 초상?, 벨기에 왕립 미술관 브뤼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53살에 재혼한 16살의 헬렌 푸르망(Helena Fourment)의 초상인데, 물음표가 붙어있는 걸로 봐선 뭔가 의문점이 있다.

루벤스의 아틀리에는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작업실이었다. 제자들을 100여명이나 두고 풍경, 동물, 식물 등 전문 분야로 후진을 양성했다. 루벤스의 교육 방침에 따라 제자들이 작업을 하면, 루벤스가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다.

루벤스가 직접 그린 아래 초상화와 비교해 보면 얼굴은 분명히 헬렌 푸르망이긴 한데, 성형이라도 한 듯 턱이 가름해졌고 콧대는 약간 높아졌으며, 눈동자 색과 몸매도 다르다.

17세기엔 통통한 여자가 미인으로 인정받던 시대였으나, 루벤스는 특히 풍만한 여인을 좋아했다. 어린 신부를 지극히 사랑한 루벤스에게 10년은 꿈같이 달콤한 시간이었다. 첫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는 1626년에 흑사병으로 죽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외교 밀사로 해외에 나가며 슬픔을 달랬다.

사람들은 스페인과 영국에서 귀족 작위를 받은 루벤스가 귀족 여인과 재혼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루벤스는 랄랭 부인의 시동(侍童)으로 궁정에서 살아도 봤고, 유럽의 여러 왕실 가까이에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것을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루벤스는 전원에서 소박하게 살기를 원해 평범하지만 부유한 태피스트리 상인의 막내딸 헬렌 푸르망과 1630년 재혼하였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32)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장갑을 끼고 있는 헬렌 푸르망, 1632년경, 참나무 패널에 유채, 96.6x69cm, 출처: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

헬렌 푸르망의 대표적인 전신 초상화에 비해 이 그림은 훨씬 심플해 보인다. 헬렌이 장갑을 끼려고 하는 순간을 포착해 구도는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당시 장갑은 가장 부드러운 양과 어린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었고 염색을 하고 무두질을 한 뒤 섬세한 바느질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금덩어리만큼 비쌌다. 그래서 장갑은 우연을 가장한,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소품이다. 

십 대의 어린 신부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한 피부 표현에서 루벤스를 따라올 화가는 없다. 워낙 풍만한 가슴으로 인해 목에 꽉 끼는 초커(Choker) 형태인 진주목걸이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렇게 찬란한 젊음이 있으니 보석도 빛을 잃었다. 통풍(루마티스?)을 앓았다는 오십 대의 루벤스의 눈에 비친 신혼의 헬렌은 '모피'에서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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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 모피, 1636~38, 캔버스에 유채, 176x83cm, 빈 미술사 박물관

​루벤스의 '모피'는 헬렌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벗은 몸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헬렌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그녀는 부잣집 막내딸로 둥근 얼굴에 반듯한 코를 가졌다. 고생은 모르고 자라서 부드럽지만 커다란 눈이 선하고 겁도 많아 보이며, 풍만한 몸은 낙천적인 그녀의 성품을 짐작케 한다. 

루벤스는 빛으로 화폭을 지배했다. 여성의 누드는 빛과 명암의 조화를 이룬 피부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다. 한 손으로 가볍게 잡은 벨벳과 대조적인 모피 외투는 약간 섬세한 리넨의 배경과 붉은 카펫으로 인해 돋보인다.

루벤스는 아래 티치아노의 '모피를 두른 소녀'를 영국 왕실에서 보았고, 그래서 헬렌을 모델로 삼아 '모피'를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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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베첼리노, 모피를 입은 소녀, 1535, 캔버스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백 년 전의 티치아노의 지적이고 우아한 '모피를 입은 소녀' 보다 루벤스의 '모피'는 훨씬 더 사적이고 은밀하다. 루벤스가 그린 헬렌의 몸매와 손질된 머리가 비할 데 없는 효과를 준다.

그래서 우리는 다리의 움직임과 형태 그리고 무릎 위에 흉하게 처진 살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이 작품은 거의 말년에 그렸다. 이렇게 젊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했을 루벤스의 처절했던 심정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루벤스는 '모피'에서 헬렌을 ‘비너스의 정숙한 포즈’를 의미하는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 자세로 묘사하며 비너스라 생각했다. 결혼식에 온 지인은 헬렌을 '트로이의 헬렌'이라고 축사를 했다. 자신의 부인을 비너스라 생각했던 화가에게 아주 흡족한 찬사였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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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 카피톨리나, 대리석, 2세기, 180x70x67cm,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위 조각은 그리스 시대 여성의 나체로, 몸을 구부려 수줍어하며 한 손으로는 가슴을 다른 손으로는 음부를 가리고 있는 정숙한 포즈이다. 이런 아프로디테의 자기 방어적 모습이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베누스 푸디카’ 포즈이다.

조각이 안정적으로 서 있게 하는 왼쪽 다리 옆의 항아리와 천은 지지대다. 무척 공들인 아름다운 헤어스타일로 고개는 살짝 옆으로 돌리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의 선택을 받은 미와 사랑의 여신이자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고전 예술에서 율동적인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콘트라포스트(Contraposto) 즉, 한 쪽은 직선이고 다른 쪽은 유연한 S자로 왼쪽 다리에 체중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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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삼미신, 1638~40년경, 나무에 유채, 221x181cm, 출처: 프라도 미술관

​루벤스는 여기서 새로운 스타일로 서 있는 누드의 다양한 자세를 묘사했다. 비스듬한 앞모습과 뒷모습, 아름답게 젖힌 머리,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얽힌 팔과 손의 동작까지도 말이다.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 그곳 사람들이 말할 때 사용하는 격렬한 제스처를 본 것이 이 그림에 도움이 되었다. 그의 그림에서 손가락들은 항상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우아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최후의 만찬'에 농아의 손동작을 관찰하여 열 두 제자들의 개성을 구체적인 내러티브로 묘사했다. 그래서 이전 화가들의 열 두 제자들의 이름을 명시한 최후의 만찬과 다른 성격을 부여한 그림으로 괴테가 처음으로 제자들의 이름을 밝혀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세 여신은 서로 포옹하며 발을 움직여 부드럽게 원을 이룬다. 그들은 다정한 눈길을 나누며 춤을 추는 듯하다. 나무 사이 스며드는 햇살로 들판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오른편에는 풍요의 뿔을 가진 어린 아이가 물을 받고 있다.

‘풍요의 뿔’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이다. 루벤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많이 그려서 그의 작품만으로도 신화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루벤스는 말년에 두 아내를 '삼미신'으로 표현했다.

오른쪽에 첫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 왼쪽에 두 번째 부인 헬렌 푸르망을 그렸다. 두 번째 부인 헬렌이 낳은 셋째 딸에게 ‘이사벨라 헬렌’이라고 아내들의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헬렌의 넉넉한 품성이 드러난다.

그가 결혼한 부인들 덕분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루었다는 소회와 이복 자녀들이 우애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다고 짐작된다. 루벤스는 아버지의 스캔들로 집안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잘 알고 있기에 평생 부인들을 사랑하고 건실한 가정을 유지했다.​

그의 아버지인 얀 루벤스는 1562~1567년까지 안트베르펜의 변호사였다. 칼뱅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는 아내 마리아 피펠린크스(Maria Pijpelinckx)와 함께 박해를 피해 쾰른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작센 출신 안나의 법률고문이자 비서가 되었다. 그러나 안나가 임신하자 그녀의 남편 오렌지 공 빌헬름은 간통죄를 적용하여 그에게 1571년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아내의 간청 등 천신만고 끝에 지겐으로 망명하기로 합의하고 감형을 받아 사형은 면했다.​

그런 연유로 루벤스는 망명지인 지겐에서 1577년에 태어났다. 1587년까지 가족은 퀼른에서 살았으나, 남편이 사망한 뒤 마리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루벤스는 성당의 라틴어 부설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누나인 블란디나의 지참금 때문에 1590년에 그의 정식 교육은 중단되었고, 랄랭 백작 부인의 시동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 

루벤스는 천재적인 창조력을 갖추었지만 혼자서 모든 걸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유산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의 예술품을 모사하는 등 기본에 충실했다. 그는 또한 인문학자로서 고전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다.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르네상스를 접목해 왕과 귀족들이 원하는 웅장한 바로크 작품을 제작해 주니 주문이 밀려들었다. 작품이 크면 클수록 돈도 많이 벌었다. 

루벤스는 시대를 읽었고, 시대를 이끈 위대한 거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교훈을 잊지 않고 언제나 가정에 충실한 다정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린 자녀를 모델로 그린 소박한 초상화를 더 좋아한다. 루벤스는 죽으며 유산의 반을 젊은 헬렌에게 남겼다.

헬렌은 이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그랬는지 남편이 죽고, 몇 년 안에 작품을 많이 팔아야 했다. 그리고 지체 높은 귀족과 재혼했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