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해요 [공백기 인터뷰]

기사승인 2024-04-16 14: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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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해요 [공백기 인터뷰]
사진=셔터스톡

삶의 어느 지점, 우리는 모두 공백기를 지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일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1개월 이상의 공백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공백을 경제 손실, 게으름과 무능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공백기를 보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불행하다. 그냥 쉬는 사람은 없다.

사단법인 니트생활자는 공백기를 보내는 청년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만드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19년부터 공백기를 보내는 20~30대 청년들을 1000명 이상 만나오며 공백기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각기 다른 이유로 공백기를 보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할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할 청년 녹차(38·가명)는 끝없는 경쟁과 가족의 통제로 인해 외로움을 느꼈다. 5년의 공백기를 지나 사회 활동을 시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떻게 니트 상태가 되었나요.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졌어요. 분기에 한 번 정도 자격증 시험을 보러 외출하는 정도였죠. 그게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는 등 일상이 바쁜데 저는 다르다 보니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어요.

-당시 환경은 어땠나요.

대학에 들어가도 스트레스였어요. 진로도 부모님 결정에 따랐고, 또래들과 친해지기도 힘들었어요.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컸고요.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부모님이 싸우셨어요. 아버지는 제게 “나이가 많아서 망했다”며 “더 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말들이 스트레스였어요. 대학에 다니는 동안 놀지도,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아버지 통제 속에 대학원에 갔어요. 준비하던 시험이 있었는데 잘 안됐죠. 한 과목만 학점이 나빠도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힘들었죠. 인생 망했다고 생각했거든요. 힘들어하면서도 경쟁적인 분위기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운데 뭐가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는 거예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외로움이었더라고요.

-전환점을 맞이한 계기가 있나요.

시험을 포기하면서요. 결정은 오히려 쉬웠어요. 로스쿨이라 5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고, 그 기회가 끝나면 시험을 볼 수 없어요. 졸업 이후에는 이쪽 길로 가질 못하니 깔끔하게 포기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이거 아니어도 나는 살 수 있다는 것을.

-니트 상태에서 도움이 됐던 프로그램이 있나요.

시험 준비하면서 우울증 때문에 주민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집단 상담 같은 활동이나 자조 모임 형태 프로그램이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모임에서 나이가 어린 편이다 보니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다른 분들이 챙겨 주고, 보살펴 주기도 하셨죠. 또래들과는 경쟁 관계에 놓여 힘들었는데 전적으로 지지 받다 보니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있었나요.

함께 교육받던 사람들이 모인 소모임이 있었어요. 어느 날 모임 관계자분이 제 이름을 불러주시더라고요. 명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순간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 지역 건강 축제나 부스 운영 행사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 봉사활동도 나갔어요. 그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주민자치회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재는 어떻게 지내나요.

돈을 벌게 되니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어요. 자존감도 올라가고요. 아버지는 여전히 싫어하세요. 계약직이고, 불안정하다고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며 월급을 넘어 사명감을 느끼게 됐어요. 직장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니트 상태인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직업 훈련을 시켜서 사회로 내보내는 건 말이 안 돼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피부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살짝만 닿아도 아픈 사람. 일자리도 필요하겠지만, 관계를 만들어주고 치유할 시간을 줘야 해요. 가까운 곳에 니트컴퍼니 같은 관계망 형성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어요. 혼자는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니트생활자 admin@neetpeople.kr 기사모아보기